
8~9세기 스칸디나비아의 대외 확장에서 약탈 원정은 중요한 한 축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왕국이 형성되고, 이들 국가가 카롤링거 제국 세계와 접촉하면서 촉발된 현상이었습니다. 바이킹들은 이미 익히 알고 있던 무역로를 활용해 서유럽 전역을 기습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각 지역 바이킹들의 진출 방식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덴마크인들은 잉글랜드와 북해·영국 해협 연안 국가들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고, 노르웨이인들은 스코틀랜드 북부 도서지역과 아이슬란드, 그린란드에 무역 거점을 세웠습니다. 반면 스웨덴인들은 발트해를 건너 슬라브 지역의 큰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비잔티움(동로마 제국)까지 도달했습니다.
왕국의 심장부로
카롤링거 제후들이 군사적 저항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덴마크와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들은 대서양 연안 지역을 공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왕국의 심장부까지 유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약탈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규모와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9세기 초에는 10~20척 규모의 소규모 선단이 짧은 기간 동안 습격을 감행하고, 금·은·보석·노예 등의 전리품을 실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성공에 용기를 얻은 바이킹들은 점점 더 거대한 함대를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885년에는 무려 700척의 함대가 센 강을 거슬러 올라 파리를 포위하고 1년 넘게 머물렀던 것입니다.
스칸디나비아 확장의 3단계
역사학자들은 이 스칸디나비아 확장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합니다.
1단계(800~850년): 바이킹들의 주된 관심사는 금과 은이었으며, 이러한 부는 주로 수도원, 교회, 제후의 궁전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2단계(850~880년): 부유한 지역이 사실상 약탈당한 뒤에는 전술이 바뀌었습니다. 바이킹들은 도시나 수도원을 포위한 뒤, 막대한 몸값을 지불하면 떠나겠다고 협박하는 방식으로 부를 뽑아냈습니다.
3단계(880년 이후): 마지막 단계에서 바이킹들은 단순한 약탈을 넘어 정착할 땅 자체를 찾아 나섰습니다. 일부 정착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페로 제도·아이슬란드·그린란드에서는 영구적인 식민 정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