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민의 즉각적인 반격
이후 벌어진 소탕 작전에서 프랑스군은 적의 무기와 식량 비축물을 발견해 파괴했다. 행군과 전투로 일주일을 보낸 뒤인 11월 16일, 공수부대는 트럭을 이용해 하노이로 철수했다. 그러나 베트민의 대응은 매우 빨랐다. 두 개 연대가 미리 설치해 둔 매복 진지가 후위 부대를 요격해 트럭과 전차를 파괴했고, 프랑스군은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이때 얻은 교훈은 이후 두 차례 인도차이나 분쟁에서 그 타당성을 입증하게 된다. 적 기지 깊숙이 침투하는 것 자체는 비교적 쉽지만, 적이 재정비하고 역습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면 기습 부대는 현장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목표, 랑선
다음 해 봄, 라오스 방면으로 추진했던 베트민의 공세는 실패로 돌아갔고, 양측 사이에 어느 정도 균형이 형성되자 프랑스군은 적 보급선에 대한 또 한 번의 기습을 계획했다. 선택된 목표는 중국 국경 근처, 적지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집결·보급 거점 도시 랑선(Lạng Sơn)이었다.
랑선에서 이어지는 보급 도로에 대한 항공 차단 작전은 보급망에 병목 현상을 일으켰고, 그 결과 물자와 탄약이 도시 북쪽의 폭격 방호 은폐소에 대량으로 축적되어 있었다.
전보다 더 험난한 임무
이번 기습이 이전 작전보다 훨씬 어려울 것임은 분명했다. 도시와 은폐소를 점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목표 지점과 가장 가까운 아군 진영 사이에는 산악과 수림이 뒤섞인 70km가 넘는 구간이 펼쳐져 있었고, 통행 가능한 도로는 거의 없었다.
방어 측 병력은 랑선에 주둔한 지역 대대 1개와 성(省)급 중대 2개였으며, 불과 10km 거리의 중국 국경 지대에는 경대공포병 부대 몇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제308보병사단 일부는 타이응우옌(Thái Nguyên)에서 48시간 거리에 있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랑선에서 가장 가까운 프랑스 거점 티엔옌(Tiên Yên)까지 이어지는 70km의 적지에서 첫날 최대 8개 성급 중대가, 둘째 날부터는 4~6개 중대가 추가로 투입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비' 작전의 세 단계
작전 지휘는 질(Gilles) 장군에게 맡겨졌으며, 작전명은 '제비(Swallow)'로 명명되었다. 작전은 세 단계로 구성되었다. 첫째, 7월 17일 공수 강하에 이어 랑선의 물자 창고를 파괴하는 것. 둘째, 로빈(Lộc Bình) 인근 송끼(Sông Kỳ) 강의 다리를 확보해 철수로를 엄호하는 것. 셋째, 같은 날 티엔옌에서 시작해 티엔옌–딩랍(Tiên Yên–Đình Lập) 축선을 따라 북서쪽으로 진격하는 육상 작전으로, 이는 공수부대와 아군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