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빅토리아 여왕과 대영제국: 모든 전선에 투입된 군대들

빅토리아 여왕과 대영제국: 모든 전선에 투입된 군대들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 동안 영국은 아프리카에서는 대륙 남북 전역에 걸쳐 지배력을 강화했고, 아시아에서는 크림 전쟁(1853~1856)으로 패배한 러시아를 견제하며 인도 아대륙을 장악하고, 쇠퇴해가던 중국 제국에도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대영제국의 팽창은 단순한 무역 확장이 아니라 철저한 군사적 정복과 통치를 수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집트와 수단

1875년 디즈레일리 총리는 이집트가 보유한 수에즈 운하 지분을 영국 정부가 매수하도록 조치하여 인도로 향하는 핵심 해상로를 확보했습니다. 이어 1882년에는 이집트를 사실상의 보호령으로 삼았고, 1881년부터 1884년까지 수단에서 일어난 알마흐디의 이슬람 봉기 역시 군사적으로 진압했습니다.

남아프리카

1879년 줄루 왕국을 정복한 데 이어, 영국은 1880~1881년과 1899~1902년 두 차례에 걸쳐 네덜란드계 이주민들이 세운 보어인(아프리카너) 공화국들과 충돌했습니다. 특히 제2차 보어 전쟁은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동원한 대규모 전쟁이었으며, 그 결과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의 독립은 완전히 종식되었습니다.

중동

아시아 방면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은 영국으로 하여금 1839~1842년과 1878~1880년, 두 차례의 아프간 전쟁을 벌이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아프가니스탄은 명목상 독립국으로 남았지만, 외교 정책 전반은 사실상 영국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러시아와 영국이 중앙아시아를 두고 벌인 소위 '그레이트 게임'의 연장선이기도 했습니다.

인도

1857년 세포이 항쟁, 즉 영국군에 복무하던 인도인 병사들의 대규모 반란을 진압한 뒤, 영국은 인도에 대한 통치권을 동인도회사로부터 거두어 왕정 직할 통치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또한 1824년부터 1885년까지 세 차례에 걸친 전쟁 끝에 마침내 버마(현 미얀마)까지 병합하며 아시아 내 영향력을 더욱 넓혀갔습니다.

중국

제1차 아편전쟁(1839~1842) 이후 홍콩은 영국에 할양되었고, 중국은 불평등조약을 통해 외세에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제2차 아편전쟁(1856~1860)과 의화단 운동(1899~1901)의 무력 진압은 중국의 반식민지화를 한층 더 굳혔으며, 청 제국의 국제적 위상은 급격히 추락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