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남이란?
안남(Annam)은 프랑스가 통치하던 시기의 베트남, 그중에서도 중부 지역을 가리키던 명칭입니다. 식민지 이전에는 이 지역을 ‘중기(Trung Ky, 중앙행정구)’라 불렀습니다. 흥미롭게도 ‘안남’이라는 이름은 중국어로 “평정된 남방(pacified south)”을 뜻하지만, 정작 베트남인들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도 이 용어를 자국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지리적 특징
프랑스가 안남이라 부른 베트남 중부는 대체로 고원과 산지가 발달한 지역으로, 북쪽의 마강(Ma River)에서 시작해 남쪽의 바끼엠 곶(Cape of Ba Kiem), 즉 호찌민시(옛 사이공)에서 동남동쪽으로 약 76km 떨어진 지점까지 뻗어 있습니다. 옛 제국의 수도였던 후에(Hue)는 오늘날에도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중심지로 남아 있습니다.
참파 왕국에서 응우옌 왕조까지
베트남 중부의 상당 부분은 오랫동안 참파(Champa) 왕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1471년 팽창하는 베트남 세력이 참의 지배층을 격파하면서, 베트남인들이 메콩 삼각주 방향으로 꾸준히 남하할 길이 열렸습니다. 16세기 베트남이 응우옌(Nguyen)과 찐(Trinh) 두 귀족 가문 사이에서 사실상 분할되면서 후에는 응우옌 씨의 본거지가 되었고, 1802년 응우옌 아인(Nguyen Anh)이 자롱(Gia Long) 황제로서 베트남 전토를 통일하자 후에는 제국의 수도로 확립되었습니다.
프랑스 보호령과 분단의 시대
1883년과 1885년 사이 베트남 중부는 프랑스의 ‘보호’ 아래 놓였으며, 후에의 왕실은 명목상의 권력만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혼란기에 베트남은 일시적으로 북위 16도선을 경계로 나뉘어, 중부의 일부 지역이 서로 다른 점령 당국의 관할 하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후 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종결된 뒤 열린 제네바 회담에서는 잠정 분계선이 다시 한번 중부 베트남을 가로지르도록 정해졌는데, 이번에는 북위 17도선이었습니다.
민족과 경제
중부 베트남의 구릉지와 고원지대에는 다양한 산지 민족들이 거주합니다. 이들 중 일부는 참어(Cham) 계통의 언어 변종을 사용하고, 또 다른 일부는 몬크메르(Mon-Khmer) 계열 언어를 사용합니다. 반면 좁고 비옥한 해안 평야에는 다수 민족인 베트남인(킨족)이 거주하며, 주로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최대 도시는 다낭(Da Nang)이며, 가장 우수한 항만으로는 깜란만(Cam Ranh Bay)이 손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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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역사에서도 안남은 빼놓을 수 없는 지역입니다. 시암의 옛 수도였던 수코타이(Sukhothai)와 사완칼록(Sawankhalok)에서 도자기가 대량으로 생산되었으며, 아유타야(Ayutthaya)의 도자기 전통 역시 더 이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동남아 도자기들은 베트남 중부의 요지들을 거쳐 활발히 교역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