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프리칸 미팅 하우스 | 미국 보스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흑인 교회

아프리칸 미팅 하우스(African Meeting House)는 1806년에 건립되어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조이 스트리트 46번지에 자리한 건물로, 미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1805년부터 1848년 사이에 보스턴에서 설립된 네 개의 독립 교회 중 하나로, 그중 두 곳(아프리칸 미팅 하우스 포함)은 침례교였고 나머지 두 곳은 아프리카 감리교 계열이었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이 별도로 생겨난 이유는, 유럽계 미국인 교회에 다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백인 신도들과 함께 본당에 앉는 것은 물론 교회 내 의결권 행사조차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립 배경

19세기가 시작될 무렵, 뉴햄프셔 출신의 흑인 설교자 토머스 폴(Thomas Paul)은 아프리카 침례교 회중을 설립하고 이끌었습니다. 첫 모임은 패뉴일 홀(Faneuil Hall)에서 열렸는데, 이곳은 미국 독립 혁명 당시 애국지사들이 회합을 가졌던 보스턴의 공공 집회장이었습니다. 1805년 5월 26일에는 '아홉 명의 흑인'에게 세례를 베푼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 자리에서 폴과 그의 형제 벤저민은 신도들을 물가로 인도해 설교하고 기도하며 찬송을 불렀고, 많은 군중이 이를 지켜보았다고 전해집니다.

1805년 폴의 회중은 당시 보스턴 흑인 대부분이 거주하던 웨스트 엔드(West End), 즉 현재 비컨 힐 노스 슬로프(Beacon Hill North Slope)로 알려진 지역에 땅을 마련했습니다. 흑인과 백인의 기부금으로 약 7만 7천 달러의 비용을 들여 새 벽돌 건물이 세워졌으며, 공사는 거의 전적으로 흑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건물은 3층 규모에 12×15미터 크기였고 72개의 좌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1806년 12월 6일 봉헌되었고, 폴이 담임 목사로 취임하여 1829년까지 그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흑인 아이들을 위한 별도 학교 설립 요청이 두 차례나 거부당했기 때문에(매사추세츠 주의회에 제출된 1787년 청원과 보스턴 시에 제출된 1798년 청원이 각각 반대되었고, 흑인 아이들은 '무상 학교에서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 새 교회는 한동안 보스턴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이들의 학교 역할도 함께 수행했습니다. 교실은 교회 지하의 성구실에 마련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수업을 진행한 곳은 민간 자금으로 운영되던 아프리카 학교였습니다. 이 학교는 원래 흑인 공동체 내 조지 스트리트와 메이 스트리트 모퉁이의 한 주택에 있었지만, 아프리칸 미팅 하우스로 옮겨오기 전까지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학교는 1835년까지 집회소에 머물다가 새 건물로 이전하며 스미스 초등·고등학교(Smith Elementary and High School)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시 소유가 된 이 학교는 흑인 청소년 교육의 초기 옹호자였던 부유한 보스턴 사업가 아비엘 스미스(Abiel Smith)의 기부금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흑인의 패뉴일 홀'

아프리칸 미팅 하우스는 단순한 예배 공간과 학교를 넘어선 역할을 했습니다.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언론인인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William Lloyd Garrison)은 1832년 1월 6일 바로 이 집회소에서 뉴잉글랜드 반노예제 협회(New England Anti-Slavery Society)를 창설했습니다. 혁명 이전 영국의 폭정에 항의하는 회합이 열렸던 패뉴일 홀이 '자유의 요람'이라 불렸듯이, 아프리칸 미팅 하우스 역시 노예제에 항의하는 모임이 열린 장소였기에 '흑인의 패뉴일 홀(Black Faneuil Hall)'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또한 미국 남북전쟁 최초의 흑인 연대인 매사추세츠 자원보병 제54연대는 1863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폐지론자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가 이곳에서 모병하며 탄생했습니다.

아프리칸 미팅 하우스는 보스턴 흑인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역사학자 조지 르벡(George Levesque) 역시 이곳을 흑인 공동체 활동의 중심지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19세기 말 무렵 보스턴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는 웨스트 엔드에서 사우스 엔드와 록스베리 지역으로 이주했고, 아프리칸 미팅 하우스는 유대인 공동체에 매각되어 회당(synagogue)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05년에는 개리슨 탄생 100주기를 맞아 이 건물에서 그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아프리칸 미팅 하우스의 원본 교회 기록은 1900년대 초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박물관(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은 1972년 이 건물을 인수한 뒤 1855년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했습니다. 오늘날 아프리칸 미팅 하우스는 보스턴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 역사를 조명하는 도보 관광 코스인 '블랙 헤리티지 트레일(Black Heritage Trail)'의 일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비엘 스미스 학교와 함께 아프리칸 미팅 하우스는 1974년 국립 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