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마탐바 왕국 | 여성 통치자들이 다스린 아프리카 앙골라의 역사적 왕국

마탐바(Matamba)는 오늘날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 북동쪽으로 떨어진 콰고강(Cuango River) 유역에 자리했던 아프리카의 역사적인 왕국입니다. 이 왕국은 16세기 이전에 킴분두어(Kimbundu)를 사용하는 민족(음분두족 참조)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약 1550년경까지는 콩고 왕국의 영향권 아래 느슨하게 속해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 통치자들이 다스린 나라

마탐바 왕국은 여성이 자주 왕위에 올랐다는 점에서 아프리카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왕국과 달리 마탐바에서는 여성 통치자가 일반적인 현상이었으며, 이러한 전통은 왕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특징으로 남았습니다.

은징가의 정복과 포르투갈과의 전쟁

1630년부터 1632년 사이, 인접한 은돈고(Ndongo) 왕국의 통치자였던 은징가 음반데(Njinga Mbande)가 마탐바를 정복했습니다. 은징가는 흔히 '은징가'로 불리며, 문헌에 따라 은징가(Nzinga), 징가(Jinga), 깅가(Ginga)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고, 세례명인 아나 데 소우사(Ana de Sousa)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은돈고 왕국은 경쟁 세력과 그들의 동맹인 포르투갈의 압박으로 영토 일부를 잃고 밀려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은징가는 마탐바를 새로운 거점으로 삼아 포르투갈과 은돈고의 경쟁자인 응골라 아 하리(Ngola a Hari)에 맞서는 긴 전쟁을 지휘했습니다. 결국 1656년 체결된 조약으로 전쟁이 종식되었고, 마탐바와 포르투갈령 앙골라 식민지 간의 국경이 확정되었습니다.

계승 분쟁과 왕국의 운명

은징가에게는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1666년 내전 이후 마탐바는 그녀의 장군이었던 주앙 구테레스 응골라 카니니(João Guterres Ngola Kanini)의 후손들에 의해 통치되게 되었습니다. 이후 마탐바는 인접한 카산제(Kasanje) 왕국과 콰고강 유역의 지배권을 두고 오랜 경쟁을 벌였으나, 베로니카 구테레스 응골라 카니니(Verónica Guterres Ngola Kanini) 여왕이 국경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왕국의 질서를 정비하면서 갈등이 진정되었습니다.

그 후 마탐바는 포르투갈과 대체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으며, 전쟁으로 관계가 깨지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예외적으로 1744년에는 포르투갈 군대가 침공하여 마탐바 군대를 격파한 뒤 철수하면서, 아나 2세 구테레스 다 실바 응골라 카니니(Ana II Guterres da Silva Ngola Kanini) 여왕에게 명목상의 속속 관계를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1767년 아나 3세 구테레스(Ana III Guterres)가 사망한 뒤 벌어진 왕위 계승 분쟁에서 왕국은 조카 프란시스코 2세 칼루에테 카 음반디(Francisco II Kaluete ka Mbandi)와 딸 카마나(Kamana) 사이의 대립으로 두 개의 세력으로 분열되었습니다. 다행히 이후 카마나의 아들이 두 세력을 다시 하나로 통합하며 왕국의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포르투갈의 침투와 식민지 편입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특히 1830년 이후 포르투갈은 커피 플랜테이션 확장을 목표로 마탐바의 서부 지방에 대한 침투를 본격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838년에는 두크 드 브라간사(Duque de Bragança, 현재의 칼란둘라/Calandula)에 요새가 건설되었습니다.

1890년대 포르투갈의 팽창이 가속화되면서 마탐바는 포르투갈 원정군의 주요 목표가 되었고, 1909년 일련의 전쟁에 휘말린 끝에 결국 포르투갈령 앙골라 식민지에 통합되며 독립 왕국으로서의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