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최초의 로마노프 차르 미하일과 근대 러시아 군대의 탄생

최초의 로마노프 차르 미하일과 근대 러시아 군대의 탄생

혼란의 시대와 로마노프 왕조의 시작

1613년, 로마노프 왕조의 초대 차르 미하일 로마노프가 즉위하면서 러시아 군대의 근대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그로부터 거슬러 올라가기 앞선 14년간, 즉 1599년 이반 4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표도르가 사망한 때부터 1613년 미하일 로마노프가 즉위할 때까지의 기간은 러시아 역사에서 '혼란의 시대'로 불립니다. 이 시기 러시아는 국가로서 존재 자체가 위태로울 정도로 몰락했습니다.

표도르 사후 보리스 고두노프가 왕좌를 찬탈하고 여러 군사적 모험에 나섰습니다. 이어서 이반 뇌제의 막내아들 드미트리 공작을 자칭하는 두 명의 가짜 차르가 등장했습니다. 물론 실제 드미트리는 이미 1591년 암살된 상태였습니다. 이 두 찬탈자들은 폴란드와 스웨덴 군대에 의지해, 자신들을 차르로 인정받는 대가로 러시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적국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폴란드군은 모스크바마저 점령했지만, 1612년에야 마침내 축출되었습니다.

서구식 군제 도입과 '솔다츠키' 연대의 창설

이러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 미하일 로마노프는 당시 서구의 기준에 맞춰 러시아 군대 재편에 착수했습니다. 이반 뇌제가 창설한 상비 보병부대인 스트렐치는 대체로 러시아 왕좌에 충성을 유지하며 외적과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차르는 여기에 더해 새로운 무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1630년 최초의 두 개 '솔다츠키(Soldatski)' 연대가 창설되었습니다.

이 부대들은 공식적으로 스트렐치 군단 소속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서구식으로 개편된 스트렐치에 해당했습니다. 두 연대는 각각 8개 중대로 편성되었으며, 각 중대는 머스켓 총병 120명과 장창병 80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기에 연대장, 소령, 군종 신부, 의사, 지원 인력 등 176명으로 이루어진 참모 중대가 하나씩 배속되었습니다. 1632년에는 같은 형식의 연대 네 개가 추가로 창설되었고, 초기에는 상당수의 외국인 장교가 이 부대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 장교들은 점차 떠나갔고, 솔다츠키 연대는 전원 러시아인으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군복은 스트렐치와 비슷했으며, 급여와 급식 방식도 동일했습니다. '형제' 부대인 스트렐치와의 차이는 구성원의 신분과 전투 방식에 있었습니다. 솔다츠키 연대에는 여러 사정으로 재산을 잃은 보야르(귀족)도 입대할 수 있었고, 농노는 입대와 동시에 해방되어 재산권을 얻는 특전이 주어졌습니다.

기병의 근대화: 라이터와 용기병

같은 시기에 서구식 기병 연대, 즉 권총을 장비한 라이터(Reiter) 연대도 창설되었습니다. 이곳 역시 보야르부터 농노까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입대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라이터 연대는 규모가 매우 컸는데, 각 연대는 약 2,000명으로 구성되어 12개 중대 단위로 편성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 최초의 용기병(dragoon) 연대가 창설되었으며, 각 중대 120명씩 총 12개 중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용기병들은 승마한 스트렐치에서 발전한 부대로, 말로 기동하되 하마하여 보병처럼 싸우는 전술을 채택했습니다.

한편 이 시기 스트렐치의 세력은 크게 쇠퇴하여, 러시아 전역을 통틀어 겨우 8,0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서쪽 국경에서는 폴란드와 스웨덴에, 남동쪽 국경에서는 타타르와 투르크에 맞서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스트렐치의 수는 곧 다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