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누구인가?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입니다. 그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국정을 운영했으며, 네 차례나 대통령에 선출된 미국 역사상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의 재임 기간에는 미국과 세계의 역사를 바꾼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 뉴욕 증권거래소 붕괴(1929년)
- 진주만 해군기지 공격(1941년)
-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생애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는 1882년 1월 30일 뉴욕주 하이드파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제임스 루즈벨트와 사라 루즈벨트의 아들로, 네덜란드계 이민자 출신의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1901년부터 미국 대통령직을 수행한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먼 친척이기도 했습니다.
루즈벨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먼 친척인 애너 엘리너 루즈벨트와 결혼해 슬하에 여섯 자녀를 두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그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뉴욕주 상원의원, 해군부 차관보, 뉴욕 주지사 등 다양한 요직을 거쳤습니다.
그의 삶은 심각한 건강 문제로 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1921년 소아마비(폴리오)에 걸려 신체 마비를 겪었지만, 루즈벨트는 좌절하지 않고 정치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그는 1932년, 1936년, 1940년, 1944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했습니다. 집무 초기에는 경제 회복에 주력하며 '뉴딜(New Deal)'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1929년 대공황으로 수많은 기업이 파산했고, 실업률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고 있던 미국은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공격 다음 날, 루즈벨트는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 문서에 서명했고, 이로써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공식적으로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2월, 그는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영국의 윈스턴 처칠과 함께 얄타 회담에 참석했습니다. 이 회담은 이미 승기를 확실히 잡은 연합국이 전쟁의 종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이들 세 지도자는 그 영향력과 권위 때문에 '빅 스리(The Big Three)'로 불렸습니다.
루즈벨트는 1945년 4월 12일 조지아주 웜스프링스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63세였으며, 4번째 임기를 끝까지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뉴딜 정책
1929년 미국을 덮친 대공황을 극복하고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루즈벨트는 '뉴딜(New Deal)'을 제안했습니다.
'뉴딜'은 그가 집권한 직후인 1933년부터 1937년 사이에 시행되었습니다.
이 정책은 국가가 경제 조직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케인스주의 정책 기조에 기반을 두었으며, 복지 국가(Welfare State) 개념에도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뉴딜은 국가 투자와 민간 투자를 결합한 일련의 경제·사회 정책이었습니다. 그 목표는 1929년 증시 붕괴로 큰 타격을 입은 미국 경제를 회복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케인즈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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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명언
- "우리의 진보를 가늠하는 잣대는 많이 가진 자에게 풍요를 더해주느냐가 아니라, 가진 것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나누어주느냐에 있다."
- "미국은 이끌어야 한다. 리더십을 발휘하고 언제나 화해와 타협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미국은 세계 평화를 지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다."
- "사람들은 지도자와 상사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곤 한다. 지도자는 앞장서 이끌고, 상사는 뒤에서 지휘한다."
- "내일 우리가 이룰 성취를 가로막는 유일한 한계는 오늘 우리 안에 있는 의심과 망설임이다."
-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유를 허용해주는 것은 더 좋고 또 더 드문 일이다."
- "우리는 늘 젊은이들을 위해 미래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젊은이들을 키워낼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