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북방전쟁(1700~1721)은 1700년, 러시아·작센-폴란드·덴마크가 스웨덴과 그 새 국왕 칼 12세를 상대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젊은 스웨덴 국왕은 적들의 계산에 조금도 협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 군사사에서 가장 뛰어난 지휘관 중 한 명으로 부상하며, 적군을 하나씩 차례로 격파해 나갔다.
1708년 그로드노에서 그는 속도와 전술적 유연함, 그리고 뛰어난 책략의 정점을 찍었다. 바로 정면으로 러시아 차르 표트르 대제와 자신보다 11배나 많은 적군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로드노, 1708년의 겨울
1708년 겨울, 스웨덴군은 당시 폴란드 영토(현재 벨라루스) 깊숙이 진격해 있었다. 1708년 1월 26일, 스웨덴 왕 칼 12세는 소수 정예 부대를 이끌고 그로드노 시를 타격할 수 있는 거리까지 진출해 있었는데, 그때 숙적 러시아 차르 표트르가 9,000명의 병력과 함께 도시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 부대는 차르가 직접 동행한 러시아군의 선봉이었다.
칼 12세는 즉시 강력한 일격으로 차르를 생포하거나 죽인다면 러시아를 전쟁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단 800명의 병력만을 이끌고 그로드노를 향해 번개처럼 진격했으며, 11대 1이라는 압도적인 열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속도는 곧 힘이다"라는 오래된 군사 격언처럼, 전사(戰士) 국왕은 이를 실천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네만 강 다리 위의 기습
그로드노 교외에는 네만 강이 흐르고 있었고, 강 위에는 다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표트르 대제는 이 다리를 지키기 위해 2,000명의 병력을 배치해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다리를 지키던 러시아 병사들은 갑자기 요란한 함성을 듣게 되고, 검을 높이 치켜든 스웨덴 국왕이 8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어둠 속으로 돌진하는 광경을 보고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기습에 앞서 스웨덴 병사들은 기도를 올린 뒤 "놈들을 향해!"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전해진다.
러시아군은 반격을 시도했지만, 극심한 혼란 속에 발사한 사격은 대부분 빗나갔고 스웨덴군의 피해는 불과 11명의 전사자에 그쳤다. 러시아군의 손실 자체는 56명의 전사자로 크지 않았지만, 이때 터진 공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차르의 굴욕적인 밤
공황은 도시 안, 표트르 대제의 사령부까지 번졌다. 차르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베레지나 강 너머로 즉각 후퇴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에야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은 표트르는 분노를 금치 못했고, 3,000명의 병력에게 소수의 스웨덴군으로부터 도시를 탈환하고, 가능하다면 무례한 칼 12세를 죽이거나 생포하라고 명령했다.
러시아군은 밤이 깊기를 기다렸다가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친 것은 불과 30명뿐인 깨어 있는 스웨덴 경계병이었고, 모든 예상을 깨고 러시아군은 격퇴당하고 만다! 총성에 잠에서 깨어난 칼 12세와 스웨덴 병사들은 이번엔 역으로 적에게 공격을 퍼부었고, 패자인 러시아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기며 완전히 흩어버렸다. 러시아군과 그 차르에게 있어 가장 굴욕적인 패배 중 하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