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메리고 베스푸치: '아메리카' 대륙의 이름이 된 항해자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항해사이자 지도 제작자, 작가, 상인이었습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친 해양 탐험에 참여했으며, 새로운 대륙에 대한 그의 생생한 기록 덕분에 아메리카 대륙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  아메리카  대륙의 이름이 된 항해자

17세기 작품으로, 브라질 땅의 발견자이자 정복자로 묘사된 아메리고 베스푸치.

생애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454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학업을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천문학과 수학을 접하면서 비로소 과학에 진정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로렌초 메디치(Lorenzo Medici)의 은행에서 일하게 되었고, 가족 일행과 함께 프랑스로 향하는 외교 사절단에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1490년, 그는 콜럼버스의 항해가 임박하면서 경제적 기회가 넘쳐나던 도시 세비야로 건너갔습니다. 콜럼버스가 귀환한 후 두 사람은 만났고, 베스푸치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2차 및 3차 원정 계획을 돕게 됩니다.

또한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당시 '인디즈'라 불리던 신대륙을 세 차례 여행했습니다. 첫 번째 항해는 스페인 선박으로, 나머지 두 번은 포르투갈 선장들의 지휘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1505년 그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인디언스 거래소(Casa de Contratación)의 수석 항해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직책에서 그는 출항하는 항해사들에게 기술 지원과 해도를 제공하고, 항해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는 1512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세비야에 안장되었습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항해

베스푸치의 첫 번째 항해는 1499년, 콜럼버스의 원정에 함께했던 알론소 데 오헤다(Alonso de Ojeda)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이 사업에 자신의 저축을 모두 투자했지만 결국 이익은 얻지 못했습니다.

이 경험 이후 베스푸치는 스페인을 떠나 포르투갈로 갔습니다. 그가 카스티야 왕국의 밀정으로 리스본에 온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바다를 누비는 항해를 계속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후 그는 1501년과 1503년에 포르투갈 함대에 승선하여 대륙 남부까지 항해했습니다.

이 두 번의 항해에서 베스푸치는 그 땅이 콜럼버스가 주장했던 섬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리우데자네이루 발견의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1월 1일, 가스파르 드 레모스(Gaspar de Lemos)가 지휘하는 함대가 한 만을 발견했고, 포르투갈인들은 이곳을 큰 강의 어귀로 판단하여 '리우데자네이루(1월의 강)'라 명명했습니다.

왜 '아메리카'라고 부를까?

1503년 베스푸치는 전 직장 상사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로운 대륙을 가리켜 '신대륙(New World)'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1501년과 1503년의 항해에서 그는 그곳의 사람들과 풍토를 묘사한 32페이지 분량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한 이탈리아 출판업자는 그의 기록을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발견한 신세계와 신대륙』이라는 제목의 출판물에 실었고, 이 책은 출판계의 큰 성공을 거두며 무려 32판까지 인쇄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카'라는 여성형 이름을 지도에 처음 채택한 이는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Martin Waldseemüller)였습니다. 그는 1507년 세계지도를 제작하면서 베스푸치의 저술을 읽고 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성형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다른 대륙들도 유럽(Europa), 아시아(Asia), 아프리카(Africa)처럼 여성형으로 불렸기 때문입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  아메리카  대륙의 이름이 된 항해자

마르틴 발트제뮐러의 지도. 북아메리카부터 남아메리카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몇 세기 동안 베스푸치는 새 대륙 발견의 영광이 콜럼버스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침입자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그 땅이 아시아의 끝부분이라고 믿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전혀 다른 곳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끝내 깨닫지 못한 채, 그곳이 아시아 대륙의 일부라고 확신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반면 베스푸치는 대륙 남부를 항해하며 식생, 땅의 크기, 인구 규모를 면밀히 관찰한 끝에 그 땅이 아시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푸치나 피렌체 사람들은 발견된 땅을 실제로 점령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새 대륙 발견의 공은 그 땅을 점령하고 개척한 이들에게 돌아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