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Iliad)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기원전 9세기경에 지은 서사시입니다. 이 작품은 기원전 13세기경에 벌어졌다고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호메로스는 사건이 일어난 지 약 4세기 뒤에 살았기 때문에 이 사건의 직접적인 목격자는 아니었지만, 당시 그리스 세계를 놀랍도록 생생하고 상세하게 묘사해냈습니다.
'일리아스'라는 제목은 트로이의 옛 이름인 '일리온(Ilion)'에서 유래했습니다. '일리온'은 전설적인 프리아모스 왕의 조상인 '일로스(Ilos)'를 기리는 이름이며, '트로이'라는 명칭은 그의 아버지 '트로스(Tros)'에서 따온 것입니다.
운문으로 노래된 구전 전통
일리아스는 총 24개의 권(칸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리스와 트로이 영웅들의 무용담이 꼼꼼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랩소디오스(rhapsodes)라 불린 이들이 구전을 통해 전통과 관습을 보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옮겨 다니며, 왕의 궁정과 전사들의 진영에서 서사시와 모험담을 노래하던 음유시인들이었습니다.
호메로스는 고대 그리스 서사시의 탁월한 이야기꾼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수많은 역사적 시편들이 구전 전통 덕분에 보존되었을 것입니다.
호메로스에게 귀속되는 작품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아테네의 정치가 피시스트라토스(기원전 605~527년)가 여러 서사시를 수집하면서 비로소 문자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두 작품은 그리스 교육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서사시 속 영웅들의 자질이 이상적인 행동의 규범, 곧 표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훗날 로마에서도 호메로스는 가장 사랑받는 그리스 시인이 되었습니다.
일리아스 속에서 트로이 전쟁의 사건들은 신화로 짜여진 과거로 그려집니다. 역사적 진실보다는 신화가 우선하는 셈입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전쟁의 에피소드에 끊임없이 개입하는데, 사랑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조차 아들 아이네아스를 보호하려다 전장에서 부상을 입기도 합니다.
영웅들은 실제로 반신반인(demigod)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되어, 역사적 사실과 전설의 경계를 가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트로이 전쟁
일리아스의 주제는 그리스군이 트로이 성벽 앞에서 벌인 전투에 대한 서사입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도시 스파르타의 공주 헬레나가 납치된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헬레나는 스파르타 왕 틴다레오스의 딸이었으며, 틴다레오스 사후 새 왕이 된 메넬라오스의 아내였습니다.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의 아들 파리스가 스파르타 궁정을 방문했다가 헬레나에게 미치도록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트로이로 데려갔습니다.
메넬라오스의 형인 아가멤논은 강력한 함대를 조직하여,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등 이야기의 중심 인물들을 포함한 전사들을 소집했습니다.
그는 신들의 가호를 빌며 프리아모스의 궁전을 정복하겠다고 맹세하고 에게해를 건넜습니다. 트로이는 오늘날 터키가 위치한 반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0년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오디세우스의 계략에 따라 그리스군은 배에 몸을 싣고 철수하는 척했습니다. 그리고 트로이 성문 근처에 거대한 나무말 한 마리를 남겨두었습니다.
트로이 사람들은 그 안에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는 줄도 모른 채 이 기묘한 선물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결국 트로이는 완전히 불타 없어졌고, 헬레나는 스파르타로 데려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그리스인의 선물(Greek gift)', 즉 배후에 함정이 숨어 있는 선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러 학자들은 트로이를 호메로스의 상상산물로 여기며, 그가 묘사한 여러 장소와 마찬가지로 실재하지 않는다고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870년,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호메로스의 텍스트를 단서 삼아 잃어버린 도시의 폐허를 발굴해냈습니다.
호메로스
호메로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수많은 전설이 전해집니다. 그중 하나에 따르면, 그는 메오스의 아들로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는 역사와 음악을 배워 다니던 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한 상인을 따라 지중해를 여행했습니다.
이타카 섬에 머물면서 오디세우스(라틴식 이름 울릿세스)의 일대기를 쓰기 위한 자료를 수집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심각한 눈병의 첫 증상이 나타나 평생 실명 상태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키오스 섬에서 첫 대작 '일리아스'를 완성했으며, 바다길로 돌아오던 중 이오스 섬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호메로스의 삶에 관한 확실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그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시인의 실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호메로스 문제(Homeric Question)'라는 거대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학자들은 그의 실존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수많은 논문을 내놓았습니다. 그리스 역사에서 기원전 10~11세기 이전의 시기 전체는 그의 작품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지닌 중요성을 기려 '호메로스 시대'로 명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