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폴로 11호 – 인류 최초의 달 착륙, 그 임무의 모든 것

아폴로 11호(Apollo 11)는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데 성공한 임무로, 미국에게 과학적·정치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위업을 안겨주었습니다.

승무원은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과 에드윈 '버즈' 올드린(Edwin 'Buzz' Aldrin), 그리고 명령 모듈에 남아 귀환을 준비한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로 구성되었습니다.

달로 향한 임무 여정

아폴로 계획은 인간을 달 표면에 착륙시키는 것을 목표로 일련의 실험과 궤도 비행을 수행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엔지니어, 설계자, 수학자 등 약 15만 명의 과학자가 이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우주선은 1960년대 초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약 10년간 수행해 온 실험들의 결정체였습니다.

아폴로 11호 – 인류 최초의 달 착륙, 그 임무의 모든 것

미국의 우주 시대는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 1958~1963)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제미니 계획(Project Gemini, 1961~1966)으로 이어졌으며, 1962년 2월 20일에는 존 글렌(John Glenn, 1921~2016)이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도는 미국인이 되었습니다.

아폴로 계획은 1961년에 시작되었지만, 첫 번째 임무는 우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선발된 승무원들이 지상 테스트 중 발생한 치명적인 사고로 순직했기 때문입니다.

아폴로 2호부터 10호까지 미국 과학자들은 관찰된 오류를 하나씩 학습하고 수정하며 왕복 여행의 안전성을 확보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우주선을 세 개의 모듈로 나누고 그중 하나만 특별히 달 착륙용으로 준비하는 설계를 채택했습니다.

아폴로 11호 우주선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서비스 모듈(Service Module): 추진 장치, 전력, 산소와 물을 공급하는 부분
  • 명령 모듈(Command Module): 세 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선실로, 이 부분만 지구로 귀환
  • 달 착륙선(Lunar Module): '독수리(Eagle)'라 불리며, 달 위에 착륙하기 위한 모듈

이 거대한 우주선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 과학자들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로켓인 새턴 V(Saturn V)를 개발했습니다.

아폴로 11호는 가는 길에서 큰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우주비행사들은 달 표면에서 약 2시간 30분 동안 활동하며 미국 국기를 꽂고 암석과 모래 샘플을 수집했습니다.

또한 달의 지진 활동 정보를 5주간 전송할 지진계를 설치했고, 승무원과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이 서명한 문구가 적힌 기념 패도 남겼습니다.

문제는 귀환할 때 발생했습니다. 달 착륙선으로 돌아오던 중 올드린은 차단기를 작동시키는 스위치가 떨어져 나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 방법을 고민 끝에 그는 펠트펜으로 차단기를 눌러 장치를 작동시켰습니다.

지구로 돌아온 후, 우주비행사들은 지구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생명체를 가져오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21일간 격리 생활을 했습니다.

달 위의 인간들

아폴로 11호 – 인류 최초의 달 착륙, 그 임무의 모든 것

아폴로 11호의 승무원은 우주 비행 경험이 풍부한 세 명의 베테랑 우주비행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1930년 8월 5일에 태어난 닐 암스트롱은 항공 우주 분야의 엔지니어로, 한국전쟁(1950~1953)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습니다. 전쟁 후에는 시험 비행사로 일했습니다.

그는 제미니 계획에 선발된 아홉 명 중 한 명이었으며, 1966년 첫 궤도 비행을 수행했습니다. 3년 후에는 침착함과 신중한 성격 덕분에 아폴로 11호의 사령관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우주 비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NASA의 사고 조사에 참여했고, 신시내티 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2012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

1930년 군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공군에 입대하여 유럽 주둔 NATO 조종사로 복무했습니다. 1963년 우주 프로그램에 합류했으며, 1966년 첫 비행에서 우주유영을 선보였습니다.

콜린스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을 탐사하는 동안 명령 모듈에 남았습니다. 달에 직접 내리지는 못했지만, 동료들의 귀환이 그에게 달려 있었던 만큼 그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했습니다.

귀환 후 그는 스미소니언 협회 소속 미국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 관장과 하버드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에드윈 '버즈' 올드린(Edwin 'Buzz' Aldrin)

1930년생인 올드린은 세 사람 중 가장 총명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 공군 조종사였으며, 1963년 10월 NASA 프로그램에 합류해 1966년 제미니 계획의 마지막 비행에 참여했습니다.

아폴로 11호에 선발된 그는 귀환 시점에 독수리(Eagle) 모듈을 외부 도움 없이 직접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동료들과 달리 올드린은 지금도 우주 탐험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며 화성 유인 탐사 미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우주 경쟁(Space Race)

아폴로 11호 – 인류 최초의 달 착륙, 그 임무의 모든 것

인류의 우주 정복은 미국과 소련이 세계 패권을 다투던 냉전이라는 맥락 속에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양국은 각자의 경제 체제가 얼마나 우월한지 세계에 증명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스포츠와 무기,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을 앞세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우열을 가리려 했습니다.

소련은 1957년 10월 4일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를 발사하며 우주 경쟁에서 앞서 나갔습니다. 이는 소련이 하늘에서 무엇을 들여다보고 있을지 알 수 없었던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한 달 뒤인 1957년 11월 3일에는 최초의 생명체인 개 라이카(Laika)를 우주로 보냈습니다.

이에 맞선 미국은 1958년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국립항공우주국)를 창설하여 과학자와 우주비행사들의 역량을 지구 궤도 정복에 집중시켰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우주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가속화한 결정적 계기는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Yuri Gagarin, 1934~1968)의 비행이었습니다.

1961년 4월 12일, 가가린은 지구를 한 바퀴 완전히 돌고 108분간 우주에 머무는 최초의 인간이 되었습니다.

한 달 후,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대통령은 미국 의회에서 유명한 연설을 통해 미국이 우주비행사를 달에 안전하게 착륙시키고 귀환시키는 최초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1963년 대통령 암살 이후에도 NASA는 이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넉넉한 예산 지원을 계속 받았습니다.

소련 역시 1963년 6월 16일 최초의 여성이자 민간인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Valentina Tereshkova, 1937~)를 지구 궤도에 보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들

  • 1996년 노베르토 바바(Norberto Barba) 감독이 연출한 아폴로 11호 임무를 다룬 TV 영화가 공개되었습니다.
  •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우주인 인형 버즈 라이트이어(Buzz Lightyear)는 이 우주비행사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 냉전이 종식되면서 우주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 대중의 관심도 식었습니다. 마지막 달 탐사 임무는 1972년 아폴로 17호였습니다.
  •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화성 탐사 임무를 통해 미국이 다시 한번 우주 개척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