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브라질 바로크: 종교와 금광이 빚어낸 식민지 시대의 예술

브라질 바로크: 종교와 금광이 빚어낸 식민지 시대의 예술

글: Rainer Sousa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식민지 시대 브라질은 태생적으로 종교적 영감에서 비롯된 예술 활동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습니다. 올린다(Olinda), 헤시피(Recife), 살바도르(Salvador), 디아만티나(Diamantina), 비라리카(Vila Rica) 등 주요 식민 도시에 세워진 수많은 교회들은 바로크 양식의 흔적을 뚜렷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톨릭 교회가 종교개혁에 맞서 펼친 반종교개혁 운동 속에서 유럽 대륙에서 크게 융성했던 바로크 미술이 신대륙까지 전해진 결과였습니다.

미나스제라이스에서 완성된 독특한 바로크

브라질 땅에 상륙한 바로크 미술은 특히 미나스제라이스(Minas Gerais) 지역에서 절정기를 맞이하며 그 지역만의 개성적인 특징을 형성해 나갔습니다. 바로크는 르네상스 전통과 급격히 단절하기보다는 그 위에서 발전한 양식이었기에, 카톨릭적 종교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인간의 감정 탐구와 곡선미를 강조하는 르네상스적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브라질 바로크가 이러한 미학을 현지의 재료로 구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장인들은 비누석(황철석 계열의 연질 석재), 삼나무, 소성 점토 같은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유럽과는 또 다른 질감과 분위기를 지닌 작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조각과 회화에 담긴 극적인 신앙의 표현

미나스제라이스 바로크 조각은 일종의 시각적 교리서처럼 작동했습니다. 성인상들은 극적인 제스처, 역동적인 몸동작, 아이콘과 각종 소품을 정교하게 배치한 디테일로 특징지어지며, 조각된 성인 한 구한 구마다 저마다의 신앙 체험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표현 의도는 같은 시기에 제작된 회화 작품과 교회 건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광산 경제가 일궈낸 예술의 토양

경제·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미나스 바로크는 금광 산업이 창출한 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광산 개발은 도시 중심지의 성장을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 사회에 중간 계층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상공업에 종사하는 동시에 조각, 건축, 회화 등 예술 활동에도 두루 참여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바로크 미술의 존재 자체가, 작품을 의뢰하고 향유할 여력을 지닌 후원자층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브라질 출신 거장들의 등장

초기 브라질 바로크는 본국 포르투갈에서 파견된 장인들의 손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미나스제라이스의 도시들이 확장되면서 예술의 주도권은 점차 브라질 태생의 예술가들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알레이자지뉴(Aleijadinho)'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안토니우 프란시스쿠 리스보아(Antônio Francisco Lisboa, 1738~1814)의 조각과 교축 건축, 그리고 마누엘 다 코스타 아타이지(Manuel da Costa Ataíde, 1762~1830)의 회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브라질 바로크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uro 프레투(Ouro Preto)와 콩곤하스(Congonhas)의 성소 등에 그 흔적을 온전히 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