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에서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은 1974년 4월 25일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로, 41년간 이어져 온 살라자르 독재 정권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입니다. 1970년대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74년 4월 25일, 혁명의 날
포르투갈 국민들은 더 이상 살라자르 정권의 억압을 견딜 수 없었고, '4월의 대위들(Capitães de Abril)'이라 불리는 젊은 장교 그룹이 정권 전복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 3월 첫 번째 쿠데타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4월 25일, 리스번의 거리가 마르셀루 카에타누 대통령을 축출하는 군사 쿠데타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카에타누는 그날 저녁 7시 30분에 항복했으며, 이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름의 유래
카네이션 혁명은 사실상 무혈로 진행되었고, 희생자는 단 네 명에 불과했습니다. 빠른 승리와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어느 꽃집 주인이 군인들에게 꽃을 건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퇴근길 행인이 꽃을 나눠줬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꽃을 받은 군인들은 소총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았고, 환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들 역시 카네이션을 따 들었습니다. 이렇게 카네이션은 혁명의 상징이자 이름이 되었습니다.

카네이션 혁명 연표
- 1973년 9월 9일: 포르투갈 독재 체제 종식을 목표로 하는 무장부대운동(MFA)이 결성되다.
- 1974년 3월 16일: 군사 쿠데타 시도가 실패하고 약 200명의 병사가 체포되다.
- 1974년 3월 24일: MFA가 회의를 열고 군사 쿠데타를 통한 정부 전복을 공식 결정하다.
- 1974년 4월 24일: 신문 '레푸블리카(República)'가 국민들에게 그날 밤 르나셴사(Renascença) 라디오 방송을 들어줄 것을 요청하다.
- 4월 24일 밤 10시 55분: 리스번 방송 협회가 파울루 드 카발류의 노래 <작별 인사 이후(E Depois do Adeus)>를 틀면서 MFA의 작전이 시작되다.
- 4월 25일 오전 0시 20분: 당시 검열 대상이던 제카 아폰수의 <그란돌라 비야 모레나(Grândola Vila Morena)>가 방송되며, 이 곡이 군사 작전 개시를 알리는 암호로 사용되다.
카네이션 혁명의 원인
정권 붕괴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그 독재 체제의 창시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1970년 세상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또한 앙골라와 모잠비크 등에서 벌어진 식민지 전쟁으로 인한 국가적 부담과 피로는 감당하고 정당화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1968년 카에타누(1906~1980)가 집권한 뒤 내놓은 미온적인 개혁도 한몫했습니다. 포르투갈 사회는 서유럽 여러 나라처럼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어 했습니다.
카네이션 혁명의 결과
1. 식민지 전쟁 종식과 아프리카 식민지 독립 승인
- 기니비사우 — 1974년 9월 9일
- 모잠비크 — 1975년 6월 25일
- 카보베르데 — 1975년 7월 5일
- 상투메프린시페 — 1975년 7월 12일
- 앙골라 — 1975년 11월 11일
이들 영토의 독립으로 수많은 포르투갈인들이 무질서하게 본국으로 반환되었고, 이는 새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2. 망명자들의 귀환
살라자르 정권 시절 추방되었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과도 정부 수립과 헌법 제정
안토니우 스피놀라 장군(1910~1996)을 의장으로 하는 국가구원평의회(Junta de Salvação Nacional)라는 과도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1975년 입법부에 대한 자유·직접 선거가 실시된 후 새 헌법 제정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4. 민주주의의 정착
새 포르투갈 헌법은 1976년 4월 2일 승인되었습니다. 같은 해 6월 2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라말류 이아네스(1935~)가 승리했고, 마리우 소아르스(1924~2017)가 총리로 임명되었습니다.
5. 유럽 통합의 시작
포르투갈은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 절차를 밟기 시작했으며, 이후 유럽 연합(EU)의 정회원국이 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살라자르 독재란 무엇이었나
대학 교수 출신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이끈 살라자리즘은 1933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28년 재무부 장관이 된 살라자르는 강단 있는 정책으로 포르투갈 경제를 안정시키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32년 각료평의회 의장으로 임명되었고, 1933년 새 헌법에 따라 전제권력을 쥐게 됩니다.
권위주의, 언론 검열, 정치 탄압, 강제 망명, 식민지 전쟁이 살라자리즘의 특징이었습니다.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정치경찰 PIDE(국가방위국제경찰)가 감시망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에스타두 노부(Estado Novo, 신국가)'라고도 불린 살라자르 정권은 41년간 지속되었습니다. 1968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1970년 사망한 살라자르의 뒤를 이어 마르셀루 카에타누가 정권을 이어받았습니다.
혁명을 상징한 음악
카네이션 혁명은 음악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카 아폰수의 <그란돌라 비야 모레나>는 혁명의 찬가가 되어 지금까지도 포르투갈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strong>가사 (한국어 번역):</strong>
그란돌라, 짙은색 마을
형제애의 땅
백성이 가장 높은 명령자
그대 안에서, 오 도시여
그대 안에서, 오 도시여
백성이 가장 높은 명령자
형제애의 땅
그란돌라, 짙은색 마을
모든 길모퉁이마다 친구가 있고
모든 얼굴 속에 평등이 있다
그란돌라, 짙은색 마을
형제애의 땅
형제애의 땅
그란돌라, 짙은색 마을
모든 얼굴 속에 평등이 있고
백성이 가장 높은 명령자
홀름 참나무 그늘 아래서
나이를 잊은 나무 곁에서
동지를 맹세했노라
그란돌라, 그대의 뜻과 함께
그란돌라, 그대의 뜻과 함께
동지를 맹세했노라
홀름 참나무 그늘 아래서
나이를 잊은 나무 곁에서
흥미로운 사실들
- 포르투갈에서는 매년 4월 25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날은 '자유의 날'이라고 불립니다.
- 포르투갈 독재 체제의 종식은 당시 군사 독재에 맞서 싸우던 브라질인들에게도 큰 고무가 되었습니다. 브라질의 대표 음악가 치쿠 부아르키(1944~)는 카네이션 혁명을 기리는 노래 <Tanto Mar>를 작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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