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시리아 전쟁 총정리: 아랍의 봄에서 시작된 내전의 원인과 경과

시리아 전쟁은 2011년 바샤르 알아사드(1965~)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쇄적으로 일어난 '아랍의 봄'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약 2,4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겼으며, 첫 5년 만에도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리아 전쟁의 발발 원인

시리아 전쟁의 도화선은 위키리크스(WikiLeaks)를 통해 폭로된 정부 부패 의혹이었습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 다라(Daraa)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시위의 계기는 학교 담벼락에 혁명 문구를 적었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이 체포된 사건이었고, 이에 격분한 주민들이 봉기했습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보안군에 시위대 발포를 명령했고,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유혈 진압에 분노한 국민들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며 더 거세게 들고일어났습니다.

당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 전반은 반정부 시위 물결, 이른바 '아랍의 봄'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리비아에서는 최고 지도자가 실각하기도 했지만, 시리아의 대통령은 폭력으로 대응하며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했습니다.

이에 맞서 반대 세력 역시 무장하고 보안군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반군 여단들은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도시, 농촌, 마을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시리아 전쟁 총정리: 아랍의 봄에서 시작된 내전의 원인과 경과

교전 양측 모두 민간인에게 식량 봉쇄를 가했고, 물 공급도 차단되거나 제한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인도적 지원 세력마저 분쟁 지역 진입을 막혔습니다.

여기에 이슬람 국가(IS)는 국가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시리아 영내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IS는 자신들의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구타, 집단 성폭행, 공개 처형, 신체 절단 등 잔혹한 처벌을 가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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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전쟁의 교전 세력

시리아 전쟁을 이해하려면 이 분쟁에 개입한 네 개의 상이한 세력을 파악해야 합니다.

  1. 시리아 아랍 공화국(정부군) –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정부군은 대통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 방향의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라크,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2.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 – 2011년 분쟁 발발 이후 알아사드 정부에 반기를 든 여러 단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의 지원을 받습니다.
  3. 민주연합당(PYD) – 쿠르드족으로 구성된 무장 세력으로, 시리아 내 쿠르드족의 자치를 요구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 쿠르드와 튀르키예도 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자유 시리아군과 쿠르드 세력은 미국, 유럽연합(EU), 호주, 캐나다 등의 지원을 받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 도널드 트럼프는 해당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거부해 왔습니다.
  4. 이슬람 국가(IS) – 이들의 핵심 목표는 지역에 칼리파국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요 도시를 점령했지만, 결국 서방 열강에 의해 패퇴했습니다.

또한 이 분쟁은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이라는 연료를 더해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시리아 전쟁 연대기

2011년 7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다시 거리로 나섰지만, 바샤르 알아사드의 보안군에 의해 진압당했습니다.

2012년 7월

전투가 분쟁 이전 시리아 최대 도시였던 알레포까지 확산되었습니다. 다수파인 수니파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이슬람 국가의 영향력도 커져 갔습니다.

2013년 6월

UN은 이 시점까지 분쟁으로 약 9만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2013년 8월

로켓에 실린 화학물질이 다마스쿠스 교외에 떨어져 수백 명이 사망했습니다. 정부는 이를 반군 소행이라 주장했습니다.

2014년 6월

이슬람 국가가 시리아와 이라크의 일부 지역을 장악하고 칼리파국 건설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을 경고하면서 공격은 중단되었습니다.

2014년 4월~7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는 화학무기가 체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기록했습니다.

2014년 9월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군이 시리아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습니다. 같은 시기 러시아도 공습에 나서 서방의 지원을 받는 반군과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또한 혁명 시리아 국민연합과 반대 세력 연합 등 정치적 동맹이 등장했습니다.

2015년 8월

이슬람 국가 전사들이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으며, 그 방식 대부분이 참수였습니다. 같은 달 IS는 마레아(Marea) 시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습니다.

2016년 3월

알아사드 군대가 팔미라 시를 이슬람 국가로부터 탈환했습니다. 2016년 내내 평화를 위해 교전 당사자들 간의 회담이 여러 차례 열렸습니다.

2016년 9월

러시아군과 시리아군이 알레포를 폭격한 뒤 재탈환했습니다. 이 도시는 시리아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도시이자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알레포 전투는 무려 4년간 계속되었습니다.

2017년 1월

여러 교전 세력이 휴전을 협상하면서 훗날 '아스타나 프로세스'로 불리는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아스타나 협정은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만 비준했을 뿐, 시리아 정부와 망명 반대 세력은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2017년 4월

4월 4일 시리아군이 칸셰이쿤(Khan Shaykhun) 시의 민간인을 상대로 사린 가스 공격을 감행해 약 100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에 미국은 처음으로 샤야랫 공군기지를 미사일로 직접 공격하며 대응했습니다.

2017년 9월

시리아 민주군(SDF)과 이슬람 국가가 유전이 풍부한 데리조르(Deir ez-Zor)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격돌했습니다. 전투는 계속되었습니다.

2018년 2월

2018년 2월 18일, 바샤르 알아사드의 군대는 반정부 거점인 구타(Ghouta) 지역에 대한 강공을 시작했습니다. 이 폭격으로 3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월 24일, UN은 인도적 휴전을 선언해 동부 구타 분쟁 지역에 지원 물자를 운송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5시간 휴전을 명령했습니다. 그 목적은 교전 양군 사이에 끼어 있던 약 40만 명의 민간인에게 의약품, 의류, 식량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휴전은 어느 쪽도 지키지 않았고,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2018년 4월

4월 첫째 주, 잔셰이준 지역에서 화학무기 공격이 자행되었습니다. 이 무기를 사용한 것이 러시아인지 알아사드 군대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공격은 프랑스, 미국, 영국의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3개국은 연합하여 4월 13일 두마(Duma) 지역을 폭격하는 것으로 응수했습니다. 한편 러시아는 서방의 지원을 비방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를 통해 가짜뉴스를 대량 유포하며 정보전을 펼쳤습니다.

2018년 6월

레바논에 피신해 있던 800명의 시리아인들이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한 달 뒤에는 900명의 귀국 행렬이 뒤를 이었습니다.

2019년 10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튀르키예 국경 인근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마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쿠르드족이 튀르키예의 주권을 공격하고 있다며 쿠르드족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시리아 전쟁, 숫자로 보는 참상

시리아 전쟁 총정리: 아랍의 봄에서 시작된 내전의 원인과 경과
  • 분쟁으로 32만~45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 150만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 시리아 난민은 670만 명에 이르며, 튀르키예가 370만 명을 수용한 최대 수용국입니다. (출처: UNHCR/2019)
  • 브라질은 2018년까지 3,326명의 시리아인에게 입국을 허용했습니다. (출처: 법무·공공안전부)
  • 레바논에는 약 15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거주하며, 이는 레바논 인구의 약 25%에 해당합니다.
  • 650만 명이 국내에서 실향민이 되었습니다.
  • 2015년 한 해에만 120만 명의 시리아인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석유 생산량은 2010년 하루 38만 5천 배럴이었으나, 2017년에는 하루 8천 배럴로 급감했습니다.
  • 시리아 영토의 60.2%는 시리아군이 장악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이슬람 국가, 쿠르드 세력, 시리아 민주군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출처: EFA 통신/2019)
  • 인구의 70%가 안전한 식수를 구할 수 없습니다.
  • 200만 명의 아동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 전쟁 전 시리아 인구는 2,450만 명이었으나, 현재는 약 1,79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 인구의 80%가 기본 식량조차 구하지 못하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80개국에서 온 1만 5천 명의 병력이 분쟁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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