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제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괴 세력 중 하나였습니다. 13세기 아시아 초원에서 등장한 그들은 중국부터 헝가리까지 유라시아 전역의 민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1세기도 지나지 않아 몽골 제국은 독립 국가(칸국)들로 분열되기 시작했고, 15세기 말에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초원은 동유럽의 다뉴브 평야에서 남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만주에 이르기까지 5,000km 이상 펼쳐져 있습니다. 기후는 겨울이 혹독하게 추운 극한의 날씨를 보이며, 여름은 건조합니다. 이 평원에는 유목 목축 부족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말·양·소 떼와 함께 먼 거리를 이동하며 변경 지역에 자리 잡은 도시들과 교역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원에서는 아틸라와 같은 전사 집단이 속속 등장해 국경 인근에 사는 민족들을 공격했습니다. 5세기에 아틸라의 약탈은 유럽 전역에 공포를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일으킨 공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토 제국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제국을 하나로 묶어 줄 정치적 구조가 없었고, 지도자들은 군대에 지급할 전리품을 확보하는 한에서만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의 정복 전쟁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원의 전사는 바로 테무진, 즉 칭기즈 칸입니다. 그는 1206년 모든 몽골 부족을 자신의 권력 아래 통일한 뒤 '보편적 통치자'를 의미하는 칭호를 채택했습니다. 천재적인 전쟁 지휘관이었던 칭기즈 칸은 역사상 최고의 기병 군단을 창설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려면 전사들을 끊임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전리품의 흐름이 끊기면 병사들은 냉정하게 그를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는 침공과 원정으로 군대를 활동 상태로 유지했고, 북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와 이란, 그리고 흑해 연안을 돌아 남러시아까지 진출하여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보다 훨씬 넓은 영토를 정복했습니다.
몽골군의 전술에 맞설 수 있는 군대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기수로서 순식간에 위험 지대를 벗어나 말을 달리면서도 화살을 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즐겨 사용한 전술 중 하나는 후퇴하는 척하며 적을 매복지로 유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초원의 개활지에서 가장 뛰어난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칭기즈 칸의 뒤를 이어 아들 옥고다이(재위 1229~1241)가 대칸이 되었고, 이후 손자들인 귀위크(재위 1246~1248), 몽케(재위 1251~1259), 쿠빌라이 칸(재위 1260~1294)이 차례로 즉위했습니다. 그들의 군대는 티베트, 고려, 페르시아, 이라크, 그리고 러시아와 헝가리의 상당 부분을 정복했습니다. 1279년, 십여 년에 걸친 원정 끝에 쿠빌라이 칸은 송나라로부터 중국을 정복하고 '원'이라는 왕조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몽골의 마지막 대정복이었습니다. 이후 동남아시아 원정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일본 침공 시도 역시 두 차례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정복 전쟁 과정에서 몽골인들은 끔찍한 잔혹행위를 저질렀습니다. 1258년 바그다드를 함락했을 때는 20만 명이 넘는 포로를 학살했습니다. 공포를 무기로 삼는 이러한 전술은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당대 가장 발달된 두 문명인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에 영구적인 피해를 안겼습니다. 파괴된 중앙아시아의 고대 상업 도시들은 예전의 번영을 결코 되찾지 못했습니다. 북중국, 페르시아, 이라크의 광대한 지역은 인구가 급감했고, 러시아는 약 2세기 동안 유럽의 문화적 발전으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그러나 몽골의 지배가 가져온 결과 중 하나는 중국과 세계 각지 간의 무역 및 문화 교류가 크게 확대된 점입니다. 몽골인들은 무슬림에 비해 기독교 유럽인들에게 덜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마르코 폴로와 같은 상인들이 처음으로 동방으로 향하는 여정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몽골 제국의 분열
1235년 몽골 제국의 수도는 칭기즈 칸이 평생 애착을 가졌던 몽골의 카라코룸에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나 방대한 영토는 한 곳에서 효과적으로 통치하기에는 너무 넓었기 때문에, 서방 정복지를 관리하기 위해 종속 칸국들이 세워졌습니다. 러시아의 킵차크 칸국(금장군국, 초대 칸의 텐트 색깔에서 이름이 유래), 페르시아의 일 칸국, 그리고 중앙 초원의 차가타이 칸국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칸국들의 수장은 원칙적으로 대칸의 권위에 복종해야 했지만, 1260년 쿠빌라이가 칸의 자리에 오를 무렵에는 이미 모든 칸국이 그의 직접 통치 아래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쿠빌라이 이후 몽골에는 더 이상 뛰어난 통치자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이 쇠퇴하면서 서방 칸국들에 대한 명목상의 통제권마저 손에서 미끄러져 나갔고, 칸국들은 서로 경쟁하는 부족과 국가들로 분열되었습니다. 킵차크 칸국의 몽골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이로 인해 기독교 신자인 러시아 신민들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습니다. 동방에서는 티베트가 1294년 독립을 회복했습니다. 중국은 1356년부터 1368년 사이 홍무제로 알려진 농민 출신 반군 지도자 주원장에 의해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는 1266년 이래 대칸국의 수도였던 베이징을 함락한 뒤, 스스로 명나라(1368~1644)의 초대 황제임을 선포했습니다. 대칸국의 권력은 동부 초원의 몽골 핵심 지역으로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티무르의 원정
티무르(재위 1370~1405)는 차가타이 칸국 사마르칸트의 아미르이자 악명 높게 잔인한 군벌로, 몽골의 마지막 정복자였습니다. 그는 튀르크어를 사용하는 무슬림이었음에도 자신이 칭기즈 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으며, 평생의 대부분을 중앙아시아와 중동 원정에 바친 유목민이었습니다. 수많은 장인들이 노예로 사마르칸트로 끌려와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 모스크들로 도시를 빛내게 했지만, 전설에 따르면 티무르는 처형한 포로들의 두개골로 탑을 쌓았다고 전해집니다. 티무르의 제국은 그의 선배들이 세운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죽자 함께 소멸했습니다. 그의 원정은 이슬람 세계를 폐허로 만들었고, 서방 칸국들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