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은 39개 국가가 하나로 연합된 사건을 의미합니다. 19세기 중반까지 독일은 하나의 통일된 민족국가로 존재하지 않았고, 이른바 독일 연방(Germanic Confederation)을 형성한 39개의 독립 국가들의 집합체에 불과했습니다. 이 가운데 프로이센 왕국은 게르만 계통의 민족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특출난 위상을 차지했으며, 반면 오스트리아는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살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나폴레옹 전쟁과 유럽 전역을 휩쓴 민족주의적 열망은 게르만 민족들 역시 하나의 강대국, 하나의 단일 민족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소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통일 운동을 주도한 나라는 바로 프로이센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프로이센은 같은 야심을 품고 있던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여야 했고, 동시에 덴마크 및 프랑스와도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통일의 특징
독일 통일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즉, 자발적인 운동이나 대다수 국민의 민족주의적 열망, 애국적 염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 전쟁, 곧 무력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 통일된 독일에서 성립한 정부는 전제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 성격을 지녔습니다.
- 강력한 국가인 독일 제국(호엔촐레른 가문의 통치)이 탄생했습니다. 독일 제국은 굉장한 공업·문화·과학적 발전을 이루었으나 세계 지배에 대한 야욕도 함께 키웠습니다. 막강한 군사력과 영토 확장 욕구는 결국 인류 역사상 최대의 두 차례 세계대전, 즉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대전과 1939~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이는 독일 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독일 통일의 주역들
독일 통일을 이끈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프로이센을 유럽 최고의 군사 강국으로 만든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Wilhelm I). 둘째, 극도로 권위적이고 강경하며 에너지 넘치는 성격 탓에 철혈재상(Iron Chancellor)이라 불린 명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셋째, 프로이센 육군 참모총장 몰트케(Moltke) 장군입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비스마르크는 거의 30년간 집권했습니다. 처음에는 프로이센 국왕의 수상(1862~1871)으로, 이후에는 독일 황제의 재상(1871~1890)으로 활동하며 유럽의 핵심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꼽혔습니다.
프로이센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뛰어난 지성, 대담함, 끈기, 추진력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귀족이자 극단적인 왕정주의자로서, 왕권신수설을 신봉하고 민주주의와 의회를 적대시했습니다. 정치적 결정에서 감상주의는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프로이센 의회 의원을 거쳐 프랑크푸르트 의회(Deit of Frankfurt)에 파견된 프로이센 대표로 8년간 근무하는 등 독일 정치에 밝았습니다. 독일의 실정과 오스트리아의 정치 또한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며,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대사로 재직하며 유럽 외교의 미묘한 기술을 익혀 외교 전문가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국왕은 그를 수상으로 임명했습니다.
빌헬름 1세가 추진한 군제 개혁을 실행하기 위해 비스마르크는 의회를 아예 배제하고 4년간(1862~1866)에 걸친 사실상의 독재를 시작했습니다. 국왕은 자유주의자들의 항의를 무시한 채 스스로 세금을 책정했고, 의회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룬(Roon)과 몰트케의 군제 개혁안 시행을 포고했습니다.
독일 통일의 단계별 전쟁
프로이센은 다음의 세 차례 전쟁을 통해 통일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덴마크와의 전쟁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덴마크에 전쟁을 선포하여 슐레스비히(Schleswig)와 홀슈타인(Holstein) 두 공국을 탈취했습니다. 이 영토들은 이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공동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프로이센은 나폴레옹 3세의 중립 확약과 빅토르 에마누엘레 2세와의 동맹을 확보한 뒤, 일부 영토를 차지하려는 목적으로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강대한 프로이센군은 단 몇 주 만에 오스트리아군을 압도하며 사도바(Sadowa) 전투(1866)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프라하 조약(Peace of Prague)을 체결하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국, 하노버 왕국 등 여러 지역을 편입하며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 문제에서 영구히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고 독일 연방의 해체를 받아들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독일 국가들이 북독일 연방(North German Confederation)을 기반으로 통합되었고, 빌헬름 1세가 그 주권자로 추대되었습니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베네치아를 반환해야 했고, 이 지역은 이탈리아에 편입되었습니다.
프랑스와의 전쟁
이 분쟁의 도화선은 프로이센 국왕의 사촌인 호엔촐레른 가문의 레오폴트 왕자가 엘리자베스 2세의 퇴위로 공석이 된 스페인 왕위를 노리면서 발생했습니다. 프랑스는 프로이센 귀족 가문에 지배당하는 두 나라 사이에 끼이는 것을 원치 않아 이러한 야망에 반대했습니다. 얼마 후 나폴레옹 3세는 빌헬름 1세가 프랑스 대사를 궁전에서 만나기를 거부해 모욕했다며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빌헬름 1세는 사태를 예감하고 이미 5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 두었습니다. 몰트케 장군의 지휘 아래 프로이센군은 프레슈비예르(Freschwilier), 레종빌(Rezonville), 생프리바(Saint Privat) 전투에서 프랑스군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결전은 1870년 9월 2일 스당(Sedan)에서 벌어졌고, 프랑스군은 완패했으며 나폴레옹 3세 황제 본인마저 포로로 잡혔습니다. 스당 항복 소식이 알려지자 파리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군주제 폐지와 공화제 부활(제3공화국)이 선포되었고, 레옹 감베타(Léon Gambetta)가 대통령직을 맡았습니다.
군주제를 대신한 새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하기로 결정했지만, 프로이센군의 거침없는 진격 끝에 파리마저 함락되었고 프랑스는 프로이센에 항복했습니다. 1871년 5월 체결된 프랑크푸르트 조약(Treaty of Frankfort)에 따라 프랑스는 알자스(Alsace)와 로렌(Lorraine)을 프로이센에 할양하고, 50억 프랑에 달하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알자스와 로렌의 편입으로 프로이센, 이후로는 '독일'이라 불리게 된 이 나라는 마침내 통일의 대업을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