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역사상 군부 독재 종식 후 첫 직선 대통령으로 당선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Fernando Collor de Mello) 정부는 자유주의 개혁과 국가 축소를 내세웠으나, 권위적 국정 운영과 경제 위기 대응 실패, 그리고 초대형 부패 스캔들로 인해 탄핵당하며 2년 9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1989년 대선: 30년 만의 직선제와 22명의 후보
1989년 대선은 1960년 이후 29년 만에 치러진 첫 직선 대통령 선거였다. 1988년 시민 헌법과 제7773/89호 법률에 따라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었고, 정당 연대 없이 1차 투표에서 각 당이 독자 후보를 내세운 결과 역대 최다인 22명이 출마했다. 이 중 리비아 마리아 레두 피우 지 아브레우(Lívia Maria Lêdo Pio de Abreu)는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 기록되었다.
주요 후보로는 레오넬 브리졸라(PDT), 울리시스 기마랑이스(PMDB),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PT), 파울루 말루프(PDS), 마리우 코바스(PSDB), 아우렐리우 샤베스(PFL) 등 기성 정치인들이 포진했다. 반면 알라구아스 주지사 출신의 콜로르는 전국적 인지도가 낮은 '아웃사이더'로 출발했다.
1차 투표 결과 (상위 5위)
- 페르난두 콜로르(PRN) – 30.47%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PT) – 17.18%
- 레오넬 브리졸라(PDT) – 16.51%
- 마리우 코바스(PSDB) – 11.51%
- 파울루 말루프(PDS) – 8.85%
룰라와 브리졸라의 표차는 40만 표 미만으로, 진보 진영 분열이 콜로르의 1위 진출을 도왔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콜로르와 룰라의 결선투표가 성사되었다.
결선투표: 반룰라 연대와 콜로르의 승리
두 후보의 경제 비전은 극명히 갈렸다. 콜로르는 '마하라자(특권 관료)' 척결과 국가 거대화 해체, 경제 개방을 통한 '제1세계' 편입을 내세운 자유주의 개혁론자였다. 룰라는 국가 주도 개발주의와 분배를 결합한 구 MDB 노선의 계승자였다.
결선에서 PDS, PFL, PTB, PDC, PL, PMDB 일부가 콜로르 지지를 선언했는데, 역사가들은 이를 친콜로르 연대라기보다 '반룰라 연대'로 평가한다. 콜로르는 사라이 정부 실정 비판과 룰라를 '구시대 인물'로 프레임화하는 네거티브 전략으로 53% 대 47%로 승리했다.
콜로르 정부: 충격 요법과 권위주의적 국정 운영

취임 직전 해인 1989년 누적 인플레이션은 1,972.91%에 달했다. 취임 이튿날인 3월 16일, 콜로르는 전격적인 콜로르 플랜(Plano Collor)을 발표했다.
콜로르 플랜의 핵심 조치
- 예금 동결(Confisco da Poupança): 5만 크루자두 노부(약 1만 7천 레알) 초과 예금과 오버나이트 자금을 18개월 만기 국채로 강제 전환. 1991년 9월부터 상환.
- 가격 동결, 임금 조정, 관세 인하 등 병행 조치.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있었으나, 소비 위축과 신뢰 상실로 곧 인플레이션이 재연되었다. 행정 개혁으로는 23개 부처를 12개로 통폐합해 '슈퍼 부처'를 만들었고, 약 10만 명의 공무원을 해고했으나 행정 비효율은 해소되지 않았다.
역사가 릴리아 슈바르츠와 엘로이자 스탈링은 콜로르가 "정치를 구경거리로 취급하고, 의회를 경시하며, 도덕주의적·권위주의적 정치관을 견지했다"고 평가한다. 경제 실패가 드러나자 여야 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탄핵: PC 파리아스 스캔들과 '페인트 칠한 얼굴들'

1992년 5월, 대통령 친동생 페드루 콜로르가 언론 인터뷰에서 형을 고발했다. 비서실장 PC 파리아스(Paulo César Farias)가 주도한 불법 모금으로 대통령이 약 6천만 헤알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폭로였다.
PT, PMDB, PSDB 등 주요 3당이 합심해 합동 의회 조사위원회(CPMI)를 구성했고, 조사 대상이 파리아스에서 대통령으로 확대되었다. 6월에는 대통령 개인 지출이 파리아스의 검은 돈으로 충당되었다는 추가 폭로가 터졌다.
콜로르는 의회 1/3 지지를 확보해 탄핵 저지하려 했으나,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녹황 깃발 대신 검은 옷과 녹황 페인트 칠한 얼굴('카라스 핀타다스')로 탄핵을 요구했다. 8~9월 전국적 시위가 이어지자 정국은 급반전했다.
탄핵 가결과 후임
- 1992년 9월 29일: 하원 441표 찬성 38표 반대, 상원 76표 찬성 3표 반대로 대통령 직무 정지.
- 부통령 이타마르 프랑쿠(Itamar Franco)가 대통령 권한대행 취임.
- 1992년 12월 29일: 상원 최종 표결로 탄핵 확정. 콜로르 대통령직 상실 및 8년간 피선거권 박탈.
부패의 핵심 인물 PC 파리아스는 1996년 의문사한 채 발견되었다. 콜로르 탄핵은 브라질 신생 민주주의가 제도적 견제 장치를 작동시켰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참고 문헌
- 브라질리우 살룸 주니오르,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정부와 탄핵", 조르지 페헤이라·루실리아 델가두 편, 『공화정 브라질: 신공화국의 시대』, 시빌리자상 브라질레이라, 2018, 164쪽.
- 같은 책, 170쪽.
- 릴리아 모리츠 슈바르츠·엘로이자 무르젤 스탈링, 『브라질: 한 전기』, 콤파니아 다스 레트라스, 2015, 4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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