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와 독립운동의 시작
한국은 아시아 대륙의 극동에 위치한 반도 국가로, 동해와 황해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국 대륙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1910년경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을 받으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민족 의식이 크게 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독립을 추구하는 여러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1919년 초, 감금 상태로 지내던 고종황제(이희)가 서거하자 그 죽음이 일본 탓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 민심은 더욱 하나로 뭉쳤다. 이를 계기로 지식인들은 전 세계 열강에게 일본 식민 통치의 철수를 호소하는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이 운동은 3·1운동으로 이어졌지만 일본 점령 당국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 정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하자 승전국들은 협정을 통해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분할 관리하기로 했다. 38도선 이북은 소련의 관리 하에, 이남은 미국의 주도 아래 놓이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1946년 8월 소련의 영향 아래 사회주의 성향의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김일성의 주도로 결성되었다. 같은 시기 남한에서는 1948년 5월 미국의 영향을 받은 보수 성향의 정부가 이승만을 중심으로 수립되었다.
남북 양측 국민 모두 통일을 원했고, 이는 유엔의 감독 아래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통일 시도는 점령국들의 이념적·정치적 이해관계와 충돌했고, 문제는 유엔 총회로 회부되었다. 결국 한반도 통일이 좌절되자 1948년 수도를 서울로 하는 대한민국과 수도를 평양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각 선포되었다.
이후 소련군과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했지만, 미군은 일부 거점을 계속 유지했다. 이러한 상황이 3년간 이어질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
1950년 6월 무렵 북한군의 남침이 시작되면서 남한 정부의 안정이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미국은 이 사태를 유엔 총회에서 문제 삼아, 유엔 명의로 자국 군대를 파병할 수 있었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미군은 인천에 상륙하여 성공적인 역공을 개시했고, 38도선을 넘어 북한 영토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다.
그러나 1950년 말, 수천 명의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을 지원하며 참전하면서 미군의 진격은 저지되었다. 여기에 소련으로부터의 군사 물자 지원까지 더해지자 미군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38도선 이남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맥아더는 중국 대륙에 대한 공격을 제안했지만, 이 안이 받아들여졌다면 세계는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참화에 돌입할 위험이 있어 실행되지 않았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38도선 부근에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되었고, 남과 북은 완전히 분단되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남북 통일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