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아테네의 함락(기원전 404년) – 고대 그리스를 뒤흔든 27년의 패권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아테네의 함락(기원전 404년) – 고대 그리스를 뒤흔든 27년의 패권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쟁 중 하나로,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약 27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한쪽에는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이, 다른 한쪽에는 스파르타와 그 동맹국들로 구성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맞섰습니다. 단순한 패권 다툼을 넘어, 이 전쟁은 아테네의 민주주의 이상과 스파르타의 과두제 이상이 충돌한 상징적 대결이었습니다. 기원전 431년, 강대한 전쟁 함대를 앞세워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그리스 세계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던 아테네에서 전쟁의 막이 오르고, 아테네는 긴 포위전 끝에 기원전 404년 4월 22일 마침내 항복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의 단기적 승리로 끝났지만, 그리스는 황폐화되었고 도시 국가들은 크게 분열되었습니다.

 

스파르타가 도전하는 아테네의 패권

기원전 5세기 중반, 아테네의 세력은 본래 페르시아에 맞서 그리스 도시들이 결성한 군사 동맹인 델로스 동맹에 대한 지배력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아테네의 해양 제국주의, 이른바 '탈라소크라시아(thalassocracy, 해상 패권)'는 자체 동맹인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거느린 육상 강국 스파르타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두 경쟁 도시가 중재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치하는 일종의 '냉전' 국면이 이어진 끝, 코린트 분쟁을 계기로 스파르타가 아티카를 침공하면서 갈등이 본격화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아테네의 함락(기원전 404년) – 고대 그리스를 뒤흔든 27년의 패권 전쟁아테네 패권에 대한 스파르타의 적대감은 기원전 478년,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물리친 뒤 델로스 동맹이 창설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메디카 전쟁 참조). 동맹 가입을 거부한 스파르타는 테베, 보이오티아 일부 도시들 등 다루기 힘든 도시들을 규합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아테네의 제국주의를 비판했고, 과두제에 기반한 그들의 사회는 아테네가 내세운 '그리스의 학교'라는 이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테네 내부에서도 스파르타와의 동맹을 지지하는 세력은 키몬과 투키디데스(역사가 투키디데스와는 동명이인)가 이끄는 귀족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아테네의 함락

전쟁은 거의 30년에 걸쳐 해전과 육상 전투가 번갈아 벌어지고, 휴전과 극적인 전세의 변화가 반복되는 장기전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아테네는 유명한 페리클레스마저 앗아간 참혹한 역병에 시달립니다. 아테네 정치의 불안정과 동맹국들의 이반은 점차 스파르타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고, 페르시아의 재정 지원을 등에 업은 스파르타는 마침내 아테네 함대를 격파하고 아티카의 밀 공급선을 차단하는 데 성공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아테네의 함락(기원전 404년) – 고대 그리스를 뒤흔든 27년의 패권 전쟁아르기누사이 해전(기원전 406년)에서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는 모든 동맹국에게 버려졌습니다. 수개월간의 포위전 끝에 아테네는 기원전 404년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과두정 헌법을 강요했고, 오랫동안 아테네 패권의 상징이었던 '장성(長城)'을 철거했습니다. 강화 조약에 따라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해산하고 극소수 선박을 제외한 함대를 넘겨야 했으며, 이로써 스파르타의 불안정한 승리가 수년간 이어지게 됩니다.

역사는 아마도 이 비극의 증인이자 뛰어난 기록가인 투키디데스의 붓에서 탄생했을 것입니다. 이 긴 전쟁에서 스파르타 역시 아테네에 못지않게 국력을 소진했고, 그 결과 4세기에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라는 새로운 강자와,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을 계승하는 군주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참고문헌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폴리오, 2000.

- 빅터 데이비스 핸슨, 『펠로폰네소스 전쟁』, 필드 역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