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은 매년 5월 1일 전 세계적으로 기념됩니다. 이 날짜는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되어 같은 해 5월 4일까지 이어진 대규모 파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파업은 미국 내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후 그 흐름이 세계 각지로 확산되었습니다.
1886년 5월 1일 파업의 배경
산업화는 19세기 사회의 경제·정치·문화 전반을 지배하던 부르주아지(자본가 계급)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르주아지는 대상인, 은행과 공장의 소유주 등으로 구성되어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며, 경제적 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한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부르주아지는 통치자들과 연합했고, 일부는 직접 권력을 장악하기도 했습니다. 자유주의 사상에 기반하여 이들은 시민권, 법 앞에서의 평등, 인권, 그리고 국가가 이를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와 같은 개념들을 내세웠습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노예제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사람들은 원하는 일을 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화적으로 부르주아지는 개인의 노력과 근면, 그리고 짧은 기간 안에 재산을 축적하는 성공의 가치를 찬양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산업화 과정은 거대한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 계급)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자신이 가진 유일한 것, 즉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누군가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파는 것, 즉 직장을 갖는 것은 매우 익숙한 일입니다. 하지만 1750년부터 1850년 사이 피지배 계층은 노동력 외에도 다른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농민은 토지를, 수공업자는 자신의 도구와 기계를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강화되면서 많은 농민과 수공업자들은 점차 공장 노동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5월 1일 이전의 열악한 노동 조건
이들 노동자는 직장과 가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관계에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하루 14~16시간에 달하는 혹독한 노동, 식사를 위해 겨우 몇 분씩 허용된 시간,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작업 환경이 그들의 일상이었습니다. 여성과 아동의 노동도 당연하게 여겨졌으며, 남성과 동일한 일을 수행하더라도 남성 임금의 절반만 지급받았습니다.
여러 사례에서 '핫베드(hot bed)' 제도가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새로 지어진 공장들은 도시로 막 유입된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거대한 숙소를 마련했지만, 공간이 모두에게 부족했기에 교대로 사용했습니다. 한 노동자가 교대 근무를 마치고 침실에 도착하면, 다른 노동자가 방금 일어나 새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 것은 다른 생존 수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토지도 없고 스스로 부르주아가 될 수단도 없었던 그들은 공장에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다이트 운동과 카를파 운동이 바로 이 새로운 사회 관계에 맞선 노동자들의 첫 번째 저항이었습니다. 이후 노동자들은 상호부조 단체를 결성하여 예기치 못한 사고와 열악한 생활 조건 속에서 서로 돕고자 했습니다.
시위와 파업
합법적인 행위로 인정되지 않고 경찰에 의해 탄압받긴 했지만, 노동자가 공장 주인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파업이었습니다. 파업이 노동운동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수단으로 처음 인정된 것은 1864년 영국에서였습니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파업 중 하나가 바로 1886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파업입니다. 그해 5월 1일부터 4일까지 북미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제의 확립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경찰의 무력 진압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들은 '시카고 순교자'로 불립니다. 이 시위의 결과로 미국에는 8시간 노동제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러한 노동자들의 성과는 유럽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고, 20세기 동안 사실상 전 세계로 뻗어 나갔습니다. 이 운동을 기리기 위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5월 1일을 국제 노동절로 기념합니다.
노동운동이 조직력을 키워 일부 요구를 관철해 나가던 같은 시기, 자본주의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새로운 정치 사조인 사회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미하일 바쿠닌,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등 사상가들이 이끈 이 새로운 운동은 당시 노동자 처지의 부당함을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