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상공의 전설적인 공중전
F-8 크루세이더는 공격기 A-7 코르세어의 '형제격'에 해당하는 전투기로, 1957년부터 1976년까지 미 해군 항공대가 운용한 최고의 전투기 중 하나로 꼽혔다. 이 기종은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으며, 통킹만에 정박한 미군 항공모함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F-8은 동체 전방 좌우에 각각 2문씩 장착된 총 4문의 20mm 기관포로 무장했으며, AIM-9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도 탑재할 수 있었다. 최고 속도는 고공에서 시속 약 1,800km에 달했다.
A-4 호위 임무 중 마주친 미그기
1967년 12월 14일, 항공모함 USS 오리스카니(USS Oriskany) 소속 VF-11/111 비행대대의 F-8 조종사 리처드 섀퍼트(Richard Schaffert) 대위는 북베트남의 지대공 미사일 진지를 타격할 A-4 스카이호크 경공격기를 호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두 대의 미군기가 목표 지점을 향해 비행하던 중, 북베트남 미그-17 전투기 2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그-17은 구식 기종이었지만 근접 격투전에서는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는 기체였다. 적기를 발견한 섀퍼트는 기습당한 상황에서 회피를 위해 급강하했다.
고도 6,000m에서 1,000m까지 하강한 그는 A-4를 찾으려 했지만, 대신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미그기 2대를 더 발견했다. 그러나 섀퍼트는 평범한 조종사가 아니었다. 총 비행 시간 3,500시간이라는 풍부한 경험을 갖춘 베테랑이었다. 그는 상대의 기동성 우위를 알면서도 4대의 적기와 교전하기로 결심했고, 미그기 4대는 두 개의 편대로 나뉘어 공격을 시도했다.
연이은 무기 고장
섀퍼트는 애프터버너를 활용한 끊임없는 기동으로 미그기 한 쌍의 후미를 잡는 데 성공했고, 한 대를 조준해 로켓을 발사했지만 폭발하지 않았다. 얼마 후 두 번째 미그기를 향해 발사한 로켓 역시 같은 결과였다.
이번에는 미그기들이 반격할 차례였다. K-13 미사일 2발을 발사했지만 빗나갔다. 섀퍼트는 곧 우세를 되찾았지만, 세 번째 미사일 발사도 유도 시스템 오작동으로 실패했다. 결국 그는 미사일 1발과 기관포만 남은 채, 적 전투기 4대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5G 선회 기동으로 다시 한 번 미그기 뒤를 잡은 섀퍼트는 기관포 방아쇠를 당겼지만, 고 G 기동으로 인해 기관포의 공압 장전 시스템이 손상되어 포탄이 발사되지 않았다. 사실상 무장을 잃은 상태에서 적 4대를 상대하던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전투기 2대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미사일을 장착한 최신예 미그-21이었다.
생환과 교훈
미그-21 2대는 필사적으로 기동하는 F-8을 향해 각각 미사일 1발씩 발사했지만 목표를 맞히지 못했다. 이제 적이 6대로 늘었고 무장도 없는 상황에서, 섀퍼트는 전투를 중단하고 항공모함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연료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무기 고장으로 인해 단 한 대의 적기도 격추하지 못했지만, 이 6:1의 공중전은 오늘날까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항공 학교에서 교육 과정으로 다뤄지고 있다. 수적 열세 속에서도 뛰어난 조종 실력과 침착한 판단력으로 살아 돌아온 이 전투는 공중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