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키아인(Dacians)은 오늘날 루마니아 지역에 거주했던 트라키아 계열 민족으로, '세계의 주인'이라 불리던 로마를 상대로 오랜 항쟁을 강요한 무시무시한 전사들이었다.
다키아인은 북부 트라키아 계통 민족 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부류에 속했다. 그들의 사회는 부족 단위로 조직되었으며, 사회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왕이 있었고, 그 아래로 귀족, 자유 농민, 노예가 차례로 이어졌다. 평소에는 주로 농경에 종사하며 부족 간의 다툼을 벌였지만, 때로는 로마를 향해서도 파괴적인 약탈 원정을 감행하기도 했다.
로마와의 충돌
서기 85년과 87년,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그들을 정복하기 위해 원정을 벌였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트라야누스(Trajan) 황제가 서기 101~102년과 105~106년, 두 차례에 걸친 혹독하고 피비린내 나는 원정 끝에 비로소 다키아를 굴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술과 무장
다키아인은 주로 보병으로 싸웠다. 일부 귀족만이 말을 소유하여 경기병으로 활약하며 적에게 투창을 던졌다. 보병의 숫자는 매우 많았는데, 언덕과 산악, 울창한 숲, 수많은 강이 교차하는 다키아의 지형이 보병 작전에 유리했음을 생각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보병은 나무로 만든 타원형 방패로 무장했다. 가난한 전사들은 방어구라고 해봐야 이 방패 하나가 전부였고, 공격 무기로는 여러 개의 투창과 중형 검 혹은 칼을 들고 싸웠다. 귀족들은 방패와 투구, 때로는 흉갑까지 갖추었으며, 검과 투창 또는 손으로 던질 수 있는 가벼운 창으로 무장했다.
왕들은 귀족과 같은 장비를 사용했다. 소수의 보병은 활을 들고 산개대형에서 싸웠으며, 다수의 전사들—토착 다키아인과 사르마티아인 모두—이 남부 트라키아인의 사브레와 비슷한, 무겁고 외날인 검 '팔크스(falx)'를 사용했다.
로마 군단을 공포에 떨게 한 팔크스
팔크스는 한 번의 일격으로, 설령 갑옷을 입고 있더라도 상대를 두 동강 낼 수 있었던 무기였다. 로마 군단병들에게 그것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트라야누스는 오히려 자신의 군단병 갑옷을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다키아인은 비교적 느슨한 대형으로 싸웠으며, 숲을 통해 적에게 기습하거나 험준한 지형에서 매복하는 전법을 선호했다. 공격 시에는 짧은 거리에서 투창을 쏟아붓고 곧바로 검을 들고 돌진했다. 방어 시에는 사용 가능한 모든 투사체를 쏟아내어 적에게 사상자와 혼란을 일으킨 뒤, 신속한 역습으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다만 그들은 집단 전술보다는 개별적으로 따로따로 싸우는 경향이 있었고, 이것이 로마군처럼 규율 잡힌 군대를 상대할 때 그들의 가장 큰 약점이 되었다.
다키아인은 팔크스나 이와 유사한 자체 무장을 갖춘 대규모의 사르마티아 전사들을 자신들의 군대에 편입시켰다. 기병이 부족했던 탓에 수많은 사르마티아 기병을 고용해 전력을 보강하기도 했다.
데케발루스, 마지막 저항
다키아인은 데케발루스(Decebalus) 왕과 같은 뛰어난 지도자 아래에서 세계 최강의 군대에 영웅적으로 맞서 싸웠고, 로마가 그들의 나라를 정복하는 데 값비싼 피값을 치르게 만들었다. 데케발루스는 도미티아누스 치세에 감히 로마 영토를 침공해 로마의 자존심을 크게 꺾기도 했다.
그러나 서기 102년 트라야누스에게 패배한 후 그는 로마의 괴뢰왕으로서 명목상 권력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속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한 그는 다시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서기 106년 참혹한 패배를 맞이하며 몰락하고 말았다.

'다키아' 재현자들과 복제한 복장 및 무기들

살상용 팔크스(falx) 검의 복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