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이라크 전쟁을 촉발한 '대량살상무기' 거짓말 — 부시, 사담, 그리고 이란 공작원

이라크 전쟁을 촉발한  대량살상무기  거짓말 — 부시, 사담, 그리고 이란 공작원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설에 대한 치밀하게 조작된 허위 정보 캠페인 이후 시작되었다.

이라크 침공 11개월 전, 당시 미국 부통령 딕 체니의 자택에서 열린 만찬에서 대화의 초점은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 독재 정권을 전복하고 민주 정부로 교체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맞춰져 있었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시리아에서도 같은 방향의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만찬에서 나눈 '민주화' 구상

1979년 3월 26일,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 사이 최초의 평화 조약에 서명했다. 이후 1994년 10월 26일에는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며 46년에 걸친 전쟁 상태를 종식시켰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부통령 체니의 저택에서 열린 그 만찬에서는 사담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참석자들은 다만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 내 민주화를 촉발해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 평화의 고리를 완성하고, 이스라엘이 오랜 기간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을 뿐이다.

즉, 이른바 '고결한 동기'는 대량살상무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사담의 핵무기 시나리오는 온갖 파란 끝에 독일에 도착한 이라크인 탈출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꾸며진 것이었다. 그는 코드명 '커브볼(Curveball)'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커브볼'의 허위 증언

CIA 고위 관료들은 그를 심문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고, 부시 행정부는 그가 말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워싱턴을 찾아 미 의회 청문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서는 서구 문명이 사담의 위협에 처해 있으므로 군사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되었다. 이렇게 해서 사담의 핵 무기고를 파괴하기 위한 이라크 침공이 결정되었다.

그렇다면 '세계를 구한다'는 이 시나리오의 유일한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사담에게는 핵무기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커브볼'은 훗날 이야기 전체가 자신이 지어낸 거짓말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최고위 관료들과 CIA 국장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은 사담 후세인의 무기고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확보했으며, 이는 서구 문명에 대한 위협"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었다.

2조 달러의 거짓말, 잃어버린 생명

일부 세력이 믿고 싶어 했던 이 거짓말의 대가는 1조 9천억 달러를 넘었고, 4,486명의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도 32,222명에 달했다. 이라크 쪽 피해는 더욱 참혹했다. 사망자는 601,027명에 이르렀고, 300만 명이 집을 떠나 난민이 되었다.

공익감시단체 '퍼블릭 인티그리티 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2001년부터 침공이 시작된 2003년까지 이라크와 관련해 미국 국민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무려 935건의 허위 진술을 했다. 그럼에도 우방 아랍 국가들의 여론은 미국의 논리에 설득되지 않았다. 요르단에서는 96%,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68%가 미국의 주장을 거부했다.

아흐마드 찰라비, 신보수주의의 '애완견'

미국 정보기관의 가장 굴욕적인 실패 중 하나는 아흐마드 찰라비(Ahmed Chalabi) 사건일 것이다. 그는 워싱턴의 여러 신보수주의 싱크탱크가 공식적으로 밀어준 인물로, 이 단체들은 사담 후세인의 '핵 위협'에 무력으로 대응하라고 정부에 강한 압력을 가했다.

찰라비는 요르단에서 은행장을 지냈지만 그 은행을 파산으로 몰아붙인 인물이기도 했다. 재능만은 분명했다. 그는 미국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요르단으로 돌아가 페트라 은행(Petra Bank)을 설립했다. 그러나 1989년 요르단 중앙은행이 은행권에 준비금 관련 규정을 적용하면서 페트라 은행은 파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찰라비는 파산 직후 왕실 리무진을 타고 안전하게 요르단을 빠져나가 다마스커스로 향했고, 이어 런던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런던에서 사담에 맞서는 허위 정보 캠페인에 자금을 대기 시작했다. 그 규모는 2억 달러를 넘었으며, 이 자금은 사실상 파산한 자신의 은행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미국 신보수주의 진영의 '영웅'은 이후 미국 텔레비전에 수차례 출연해 사담과 그의 소위 핵 무기고에 관한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미국 대중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침공의 필요성을 확신시키는 데 일조했다.

'해방된' 이라크의 지도자 후보에서 몰락까지

2003년 미국 펜타곤은 찰라비를 미군 선발대와 함께 이라크로 보냈다. 그는 이미 미국 정보기관의 급여 명단에 올라 있었고, '해방된' 이라크의 초대 지도자가 될 운명처럼 보였다. 찰라비는 테헤란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이란 지도부와 중동 지역의 미래에 관해 논의하기도 했다.

그는 2005년 5월까지 이라크 정부의 부총리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란과의 접촉이 드러나면서 그는 미국 신보수주의 진영의 '총애받는 아이' 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찰라비가 사담 정권을 알카에다와 연결 짓는 수백 건의 위조 문서를 미국 측에 공급해 왔다는 점이다. 반면 프랑스 정보기관은 한참 전부터 찰라비가 이란의 공작원이며, 그의 임무는 미국을 지정학적 함정으로 유인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