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랑드르 출신 군인 레미 슈라이넨(Remy Schrijnen) 중사는 무장친위대 산하 플랑드르 SS 의용군단에서 제5대전차중대 분대장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새해(1944년)를 앞둔 연말, 그의 부대는 친위대 기갑척탄병 사단 '다스 라이히(Das Reich)' 예하로 지토미르(Zhytomyr) 일대에 배치되어 바투틴 원수가 지휘하는 소련군 제1우크라이나 전선군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었다. 이 무렵 플랑드르 의용군단은 '랑게마르크(Langemarck)' 돌격여단으로 개편된 상태였다.
다가오는 T-34의 물량
"레미, 탱크 소리가 들린다." 분대장이 슈라이넨에게 말했다. "T-34야, 얀." 그는 대전차포 조준경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첫 번째 적 전차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적이 옵니다, 장교님!" 그는 중대장 크노르(Knorr) 대위에게 외쳤다. 중대장은 쌍안경을 드는 순간 즉시 명령을 내렸다. "경계! 전원 전투 준비!"
슈라이넨은 적 전차의 수를 세기 시작했지만, 25대를 넘기자 세는 것을 포기했다. 그만큼 많았다! T-34들은 플랑드르 부대 진지와 약 1,800m를 두고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중대에는 방금 75mm 대전차포 '파크40(PaK 40)'이 지급된 참이었고, 모두가 그 위력이 실전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지켜보고 있었다. "글쎄 레미, 이제 곧 이 무기가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겠군." 얀이 그에게 말했다.
첫 격파, 그리고 즉각적인 반격
슈라이넨은 다가오는 적 전차를 조준경으로 응시하며 거리 200m까지 끌어들였다. 소련 전차 하나가 지형의 능선을 넘다 멈춰 서더니 포문을 열었다.
소련 전차의 포탄은 슈라이넨의 포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갔고, 그의 포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파크40의 철갑탄은 T-34의 포탑과 차체 사이에 정확히 명중했고, 포탑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회전하며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슈라이넨과 그의 부하들이 성공을 만끽할 겨를도 없었다. 남은 T-34들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포탄은 빗나갔지만, 마지막 순간 방향을 튼 적 전차의 반격 포탄은 슈라이넨의 포를 간신히 파괴하지 못한 채 근처에서 터졌다.
세 번의 부상, 그리고 마지막 격파
러시아군 포탄의 파편이 그의 헬멧을 스쳤고, 슈라이넨은 죽음을 피해 몸을 땅바닥에 밀착시켰다. 또 다른 포탄이 바로 옆에서 폭발했다.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행히 팔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오른쪽 눈을 조준경에 대고 발포했고, 그 사이 포반원 한 명이 치명상을 입었다. 소련 전차들은 계속 접근하며 포와 기관총을 쏘아댔다.
슈라이넨은 침착하게 조준했다. 그의 포탄은 지형의 볼록한 부분을 오르려던 T-34의 하부, 이른바 '배'를 명중시켜 전차를 완파했다. 불타는 전차에서 살아남은 승무원들이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순식간에 네 대의 T-34가 슈라이넨의 포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소련군 포탄이 주변에서 연이어 폭발했고, 또 한 명의 포반원이 중상을 입었으며 슈라이넨 자신도 두 번째 부상을 당했다. 그때 소련 보병이 접근해 오는 것이 보였다. 슈라이넨은 기관단총을 집어 들고 탄창 가득 총알을 쏟아붓며 공격해 오는 적 대부분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한 명의 소련군이 쓰러지기 직전, 슈라이넨의 후두에 총검을 꽂는 데 성공했다. 기도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그럼에도 간단한 응급처치를 마친 후, 그 중사는 곧바로 전투에 복귀해 세 번째 T-34를 격파했다.
진지 앞에 남은 19대의 잔해
소련군의 공격이 마침내 격퇴되었을 때, 플랑드르 부대 진지 앞에는 19대의 불타는 T-34 잔해가 늘어서 있었다. 이는 전차전과 전쟁이라는 거대한 그림 속에서 볼 때 작은 국지적 교전에 불과했지만, 한 사람의 용사가 세 번의 부상을 이겨내고 남긴 기록으로는 결코 작지 않은 전설이 되었다. 이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함 덕분에 슈라이넨은 훗날 기사십자장을 수여받으며 '플랑드르의 T-34 파괴자'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