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인 구드리드 토르비야르나르도티르(Guðríðr Þorbjarnardóttir)는 원어 표기를 존중하면 발음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첫째, 신화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은 채로 바이킹 사가에 이름이 남은 드문 여성이다. 둘째,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최초의 유럽인으로 기록된 스노리 토르핀손(Snorri Thorfinnsson)의 어머니라는 점이다. 스노리는 훗날 아이슬란드의 기독교화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며 유명해졌다.
바이킹 사가라는 기록의 창
그녀에 대한 기록은 소위 '빈란드 사가(Vinland Sagas)'로 알려진 두 문헌에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13세기 작품인 '에이리크 적색 사가(Saga of Erik the Red)'다. 이 사가는 아이슬란드에서 서쪽으로 향한 노르웨이 바이킹 무리의 여정을 다루는데, 그린란드의 발견과 정착, 그리고 뒤이어 빈란드(북미 북동부 해안 지역)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전반부의 주인공은 작품 제목의 유래가 된 에이리크 토르발드손, 즉 '적색 에이리크(Erik the Red)'다(그보다 앞서 섬에 도달한 노르만인이 있었을 수 있으나 정착에는 실패했다). 후반부의 주인공은 그의 아들 레이프 에이릭손(Leif Eriksson)이다. 레이프의 형 토르발드는 레이프스뷔디르(Leifsbúðir)라는 마을을 세웠는데, 이는 오늘날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랑스 오 메도(L'Anse aux Meadows) 유적지와 동일시된다.

또 다른 사료는 14세기 문헌인 '그뢴렌딩아 사가(Saga Grœnlendinga)', 즉 '그린란드인들의 사가(Saga of the Greenlanders)'다. 주인공들은 앞선 사가와 겹치지만 내용은 다르다. '에이리크 적색 사가'는 부제로 '토르핀 칼세프니와 스노리 토르브란손의 사가'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신천지에 정착하려 했으나 원주민인 '스크렐링야르(skrælingar, 야만인이란 뜻)'와의 전쟁 끝에 물러나야 했다. 한편, 뉴펀들랜드와 래브라도, 배핀 섬을 최초로 목격한 비아르니 헤르욜프손(Bjarni Herjólfsson)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목격담이 레이프 에이릭손으로 하여금 그린란드에 필요한 목재를 구하러 나서게 만든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라우가브레카에서 시작된 여정
배경을 10세기 아이슬란드로 돌려보자. 스나이펠스네스(Snæfellsnes) 반도 서부에 위치한 라우가브레카(Laugarbrekka) 농장이 그 무대다. 이곳은 쥘 베른의 소설 '지구 속 여행'의 주인공들이 진입한 화산으로 유명한데, 현재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신화적으로는 인간과 트롤의 아들인 바르두르 스나이펠사스(Bárður Snæfellsáss)의 탄생지이자, 입구 안내판에 기록된 대로 980년경 구드리드가 태어난 곳으로 전해진다.

구드리드의 아버지는 지역 추장 토르비요른(Thorbjorn)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운명이 펼쳐진 곳은 이곳이 아닌, 훨씬 크고 먼 섬, 그린란드였다. 아버지와 첫 남편 토리르(Thorir)는 적색 에이리크(별명은 아마 붉은 머리에서 유래)와 약 30명의 모험가와 함께 이주했는데, 그중 절반이 항해 중 사망했다. 구드리드 일가는 레이프 에이릭손이 공해상에서 구조해 준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이들이 상륙한 곳은 에이리크가 튜눌리아르피크(Tunulliarfik) 피오르드 인근 남서부에 세운 브라타흘리드(Brattahlíð) 식민지였다. 이곳은 거친 대양의 폭풍을 피할 수 있는 천혜의 항구였다. 당시 농장의 고고학적 유적이 아직 남아 있으며,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기독교 교회가 이곳에 지어졌으리라 추정된다.
종교적 격변기, 볼바의 예언과 구드리드의 선택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화는 8세기부터 시작됐다. 노르웨이의 경우 잉글랜드에서 교육받은 호콘 선왕(Haakon the Good)과 그의 후계자 하랄 2세(Harald II) 치세에 진행되었으나 부침이 심했고, 올라프 1세는 피와 불로 신앙을 강요했다. 그 시기에 십자가가 그린란드에도 전해졌다.

구드리드는 이처럼 혼란스러운 종교 전환기의 단면을 보여준다. 첫 남편 토리르가 혹독한 겨울에 사망해 과부가 된 직후, 연회 자리에서 볼바(völva, 여사제·예언자)인 토르비요르그 리틸볼바(Þórbjörg lítilvölva)가 나타났다. 그녀는 검은 망토, 검은 양가죽 후드, 고양이 가죽 장갑, 지팡이 차림으로 여인들에게 '바르들로쿠르(varðlokur)'라는 전통 주술을 함께 부르자고 청했다. 이는 샤만적 성격의 북유럽 주술 '세이드르(seidr)'의 일부로 영을 불러들이는 의식이었다.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은 어린 시절 배운 구드리드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기독교인이었기에 참여를 거부했다. 결국 "의식이 모두에게 이로우며 네 신앙을 해치지 않는다"는 설득에 넘어가 함께 불렀다. 덕분에 토르비요르그는 영의 힘을 빌려 미래를 예언했는데, 봄이 오면 기근이 끝날 것이며 구드리드에게는 길고 번영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두 번의 결혼, 빈란드로의 항해
이후 구드리드는 에이리크 적색의 셋째 아들이자 레이프의 동생인 토르슈타인 에이릭손(Thorstein Eriksson)과 재혼했다. 그는 형 토르발드가 스크렐링야르와의 충돌에서 전사한 시신을 수습하러 빈란드로 항해할 계획이었다. 일행은 뤼수피오르드(Lysufjord)라는 피오르드에서 겨울을 났는데, 토르슈타인을 포함한 다수가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사가에 따르면 토르슈타인은 죽은 뒤 아내에게 나타나 "너는 아이슬란드 남자와 재혼해 많은 자손을 남길 것"이라고 예언했다.
예언대로 구드리드는 브라타흘리드로 돌아와 토르핀 칼세프니(Thorfinn Karlsefni)와 세 번째 결혼했다. '란드나마복(Landnámabók, 정착의 책)'에 따르면 그는 전설적 영웅 라그나르 로드브로크(Ragnar Lodbrok)의 장남 비요른 라그나르손의 직계 후손이자 부유한 상인이었다. 구드리드의 권유로 토르핀은 60명의 남성과 5명의 여성(에이리크 적색의 딸 프레이디스 에이릭스도티르 포함)을 이끌고 빈란드 정착 원정을 떠났다.

아메리카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유럽인, 스노리
구드리드가 동행한 것은 역사의 행운이었다. 빈란드에서 3년을 보낸 뒤 그녀는 임신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기록상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최초의 유럽인, 스노리 토르핀손이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005~1013년 사이, 아마도 랑스 오 메도우즈에서 태어났으리라 추정된다. 하지만 스크렐링야르(아마도 알곤킨 어족의 뵈투크족)와의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자 바이킹들은 철수를 결정했다.
'그린란드인들의 사가'에 따르면, 프레이디스 에이릭스도티르는 "남자처럼 용감하게 적과 싸웠다"며 헬기(Helgi)와 핀보기(Finnbogi) 형제를 꼬드겨 두 번째 빈란드 원정을 감행했다. 비용과 수익을 반반 나누기로 했으나 곧 격렬한 분쟁이 벌어졌고, 형제와 추종자들이 살해당했다. 프레이디스는 아무도 죽이려 하지 않자 직접 여성들을 도끼로 베어 죽였다. 브라타흘리드로 돌아와 레이프에게 "형제들은 빈란드에 남기로 했다"고 거짓말했으나 진실이 드러났다. 레이프는 마땅한 벌을 내리는 대신 그녀의 후손을 저주하는 데 그쳤다.

아이슬란드 귀환과 기독교화의 주역이 된 가문
구드리드 일행이 아이슬란드로 돌아와 세일후레푸르(Seyluhreppur)에 정착했다. 토르핀이 소유한 글라움베르(Glaumbær) 농장이었다. '에이리크 적색 사가'에 따르면 부부는 토르비요른(Þorbjörn)과 비요른(Björn) 두 아들을 더 두었으나 토르핀은 다시 과부가 되었다. 장남 스노리가 가문을 물려받아 결혼했고, 딸 할프리드(Hallfrid)는 훗날 스칼홀트(Skálholt) 주교가 된 손자를 낳았으며, 아들 토르게이르(Thorgeir) 역시 주교가 된 손자를 두었다. 이후 여러 갈래의 후손에서 주교가 배출되었으니, 이 가문이 아이슬란드 기독교화에 중추적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로마 순례와 말년
아들 스노리가 장가간 뒤 구드리드는 말년에 로마로 순례를 떠났다. 베네딕토 8세 교황을 알현했다는 전설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귀국 후 그녀는 수녀복을 입고 아들 스노리가 지은 글라움베르 최초의 교회에서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토르핀이 유령으로 나타나 예언했던 그대로였다. 그녀는 1019년경 생을 마감했다.

2002년, 미국 고고학팀이 아이슬란드 북부 사우다르크로퀴르(Sauðárkrókur) 지자체 해안에서 고대 장옥(longhouse) 유적을 발굴했다. 일부 학자는 이곳이 글라움베르 농장의 일부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