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값싸고 가벼운 경량 전투기인 F-5와 MiG-21 '피시베드(Fishbed)'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한가에 대한 논쟁은 수십 년간 이어져 왔다. 이 두 기종은 수천 대가 생산되어 전 세계 60개국 이상의 공군에서 복무한 대표적인 참전 용사들이다.
첫 만남: 에티오피아-소말리아 전쟁
두 기종의 첫 교전은 1977년 에티오피아-소말리아 전쟁에서 벌어졌다. 에티오피아 공군의 F-5E가 소말리아군의 MiG-21 9대와 MiG-17 2대를 격추하면서도 자신들의 손실은 단 한 대도 없는 완승을 거두었다.
혁명 이후 약체화된 이란 공군
3년 후 두 기종은 다시 하늘에서 마주하게 된다. 악명 높은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공군은 새 정권의 숙청 작업으로 조종사의 3분의 2를 잃었다. 수십 명의 조종사가 처형되거나 투옥되었고, 가장 운이 좋은 이들조차 강제로 전역당했다.
1980년 9월 22일 이라크가 이란 영토를 침공했을 때, 이란 공군은 이미 옛날의 위상을 잃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사실 이것이 사담 후세인이 빠른 승리를 확신하게 된 배경 중 하나였다.
양측의 전력 비교
당시 이란 공군은 총 115대의 F-5E/F를 운용하는 5개 비행대대와 RF-5A 정찰기로 편성된 1개 비행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F-5에는 20mm 기관포 2문이 장착되어 있었고, AIM-9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과 폭탄도 탑재할 수 있었다.
반면 이라크 공군의 주력은 MiG-21로, 무려 9개 비행대대가 이 기체로 운용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은 MiG-21 비스(bis) 모델이었다. 이들 기체에는 소련산 AA-2C 어드밴스드 아톨과 AA-8 아피드 공대공 미사일이 장착되었으며, 일부는 프랑스산 R.550 매직(Magic)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도록 개조되기도 했다.
양측 조종사의 훈련 수준에도 차이가 있었다. 소련식 훈련 방식을 따르던 이라크와 달리, 이란 조종사들은 서구식 기준으로 훈련받았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라크 역시 프랑스와 인도와의 협력을 통해 자체적인 항공 교리를 발전시켜 나갔다.
공중에서의 격돌
전쟁 중 두 기종의 첫 교전은 1980년 9월 24일에 일어났다. 이라크 공군기지를 폭격하기 위해 Mk.82 폭탄을 장착한 이란 F-5E 4대가 이라크 MiG-21 2대에게 발견된 것이다. 이라크 측이 먼저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명중하지 못했고, 이란군 비행대장 샤리프 라드(Sharif Raad)가 사이드와인더로 응수하여 이라크 전투기 한 대를 격추하는 데 성공했다.
9월 26일에는 F-5E 2대가 MiG-21 2대의 요격을 받아 이란기 한 대가 격추되었다. 같은 해 11월 14일에는 이라크 MiG가 매직 미사일로 이란 F-5E 한 대를 추가로 격추했다. 이후에도 교전이 이어져 F-5E와 MiG-21이 모두 손실되었고, 그 과정에서 두 기체가 공중에서 충돌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왼쪽을 보니 MiG가 보였다. 나는 즉시 폭탄을 투하하고 저공비행으로 전환한 뒤, 포위당하지 않도록 매우 급격한 선회 기동을 실행했다. 이라크 조종사는 감속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지만, 나 역시 실수를 했다. 목표물에 조준이 고정되기도 전에 너무 일찍 사이드와인더를 발사해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근접 거리에서 기관포로 그를 공격했다. 상대 기체의 날개가 지면에 닿으면서 폭발했다."라고 이란군 비행대장 샤리프 라드는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노후화와 마지막 결투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두 기종 모두 진보된 전자 장비와 전자전 대응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구식이 되었음이 분명해졌다. 결국 양 진영의 이 기종들은 점차 2선급 역할로 물러나게 되었다.
두 기종 간의 마지막 도그파이트는 1983년 11월 13일에 벌어졌으며, 이란군 F-5가 이라크군 MiG-21 한 대를 격추하며 마무리되었다. 이 격추는 두 라이벌 간의 스코어를 딱 4대 대 4대로 맞춰주는 의미 있는 결과가 되었다.

1980년 11월 26일 이라크 MiG-21과의 도그파이트 당시 이란군 라드(Raad) 비행대대의 기관총 사격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