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2월, 독일 해군은 북해 도거 뱅크(Dogger Bank) 인근 해역의 영국 어선들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비킹거 작전(Operation Wikinger)'이라는 코드명이 붙은 이 임무는 제1구축함전대에 맡겨졌다.
전대는 Z1 레베레히트 마스(Z1 Leberecht Maass), Z3 막스 슐츠(Z3 Max Schultz), Z4 리하르트 바이첸(Z4 Richard Beitzen), Z13 에리히 쾰너(Z13 Erich Koellner), Z6 테오도어 리델(Z6 Theodor Riedel), Z16 프리드리히 에콜트(Z16 Friedrich Eckoldt) 등 6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되었으며, 프리츠 베르거(Fritz Berger) 함장의 지휘를 받았다. 또한 이 함대에는 독일 공군(Luftwaffe) 항공기가 동행할 예정이었다.
당시 공군 제10항공군단은 같은 해역에서 영국 선박을 공격할 목적으로 하인켈 He 111 폭격기 2개 중대의 공세적 초계 비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해군 항공대 창설 제안을 일관되게 거부했고, 독일 해군은 자체적인 항공 전력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해군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공군과의 협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참사의 씨앗이 되었다.
야심 찬 출항
1940년 2월 22일 늦은 오후, 독일 구축함들이 출항했다. 함정들은 독일 연안을 방어하는 기뢰원들 사이 폭 9km의 '베크 I(Weg I)' 통로를 통과해, 25노트의 속도로 종대를 이루며 질주했다.
밤은 추웠지만 하늘은 "맑았다". 기온은 섭씨 3도 안팎이었으나 가시 거리는 매우 좋았다. 19시 13분, 프리드리히 에콜트호의 감시병이 항공기 소리를 포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달빛 아래 구축함들 상공을 지나는 쌍발 항공기, 아마도 폭격기로 보이는 기체를 목격했다.
항공기는 별다른 일 없이 두 번째 선회 비행을 마쳤다. 그러나 8분 후 그 기체는 다시 나타났다. 베르거 함장은 영국 정찰기로 판단하고 함정들의 엔진 출력을 줄여 속도를 늦추라고 명령했다.
종대 후미의 리하르트 바이첸호와 에리히 쾰너호가 항공기에 포문을 열었고, 항공기도 기관총으로 응사했다. 그런 다음 막스 슐츠호가 그 항공기가 독일군 기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 보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공기는 곧 밤하늘로 사라졌다. 19시 43분, 막스 슐츠호가 항공기를 다시 발견하고 다른 함정들에 이를 알렸다.
진짜 공격자는 아군이었다
사실 약 2시간 전인 17시 45분, 제26폭격비행단(KG26) 제4중대 소속 He 111 폭격기들이 해당 해역의 영국 선박을 타격할 목적으로 이미 이륙해 있었다. 그중 코드 1H+IM을 단 한 대의 폭격기는 예거(Jäger) 대위가 조종하고 있었다. 이 항공기는 19시 직후 해상에서 한 척의 선박을 발견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두 차례 선회 비행을 했고, 이내 대공포화를 받자 일시적으로 물러났다. 이후 약 1,500m 거리에서 미확인 선박의 후방으로 이동해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첫 번째 진입에서 폭탄 3발을 투하해 공격했다. 그중 한 발이 레베레히트 마스호에 명중했다.
프리드리히 에콜트호가 불타는 함선을 구조하기 위해 급히 접근했다. 그러나 항공기가 두 번째 진입에서 레베레히트 마스호에 폭탄 2발을 추가로 떨어뜨렸고, 함선은 둘로 잘려 나갔다. 항공기가 떠난 뒤 다른 구축함들이 가라앉는 함선에 접근해 생존자 구조에 나섰다. 얼어붙은 바닷물 때문에 구조 작업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패닉이 부른 참사
갑자기 20시 4분, 두 번째 큰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막스 슐츠호는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곧바로 침몰했다. 이 함정은 기뢰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공포가 순식간에 번졌다. 독일군들은 사방에서 항공기와 폭탄, 어뢰, 심지어 잠수함까지 보기 시작했다. 테오도어 리델호는 폭뢰를 투하했지만, 설정 오류 탓에 오히려 자기 선체의 키(방향타)가 파손되었다!
곧 베르거 함장마저 패닉에 빠져, 수면 위에 남아 있던 네 척의 함정에게 침몰하는 함선들을 버리고 즉시 이탈하라고 명령했다.
처참한 결과, 그리고 은폐
결산은 처참했다. 막스 슐츠호에서는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고, 레베레히트 마스호에서는 승조원 중 겨우 60명만 구조되었다. 총 578명의 독일군이 얼어붙은 북해에 잠겼다. 이후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독일 당국의 공식 결론은 두 척의 구축함 모두 독일 폭격기에 의해 침몰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함선의 침몰은 적의 공격 탓으로 둔갑했다. 전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적어도 한 척의 독일 구축함은 영국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해 침몰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킹거 작전은 적과 단 한 번도 교전하지 못한 채 아군 오인 폭격, 기뢰, 그리고 지휘부의 패닉만으로 두 척의 구축함과 578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은 독일 해군 역사상 가장 어처구니없는 실패작으로 기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