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은 어느 한쪽이 더 이상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결판이 난다." 히틀러의 이 말은 1944년,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그가 새롭게 세운 전략 교리의 핵심이었다. 1944년 겨울 독일의 전략 전체가 바로 이 한 구절 위에 세워져 있었다.
히틀러의 '무승부' 전략
히틀러 자신도 독일이 더 이상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적 진영 역시 승리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믿었다. 그가 노린 것은 전략적 '무승부'였다. 연합군에게 큰 타격을 입혀, 정복할 수 없는 독일에게 스스로 강화 조약을 청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히틀러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균열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점까지 상당히 정확하게 예견했다. 문제는 연합국들이 최우선 목표인 독일 제압에 확고히 매달렸다는 데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독일을 먼저 굴복시킨 뒤에야, 원한다면 서로 부딪힐 시간이 충분히 생기는 셈이었다.
아르덴과 알자스, 실패한 공세들
이 논리에 따라 아르덴 대공세가 개시되었지만, 연료 부족으로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작전이었다. 아르덴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와 그의 측근들은 주저하지 않고 알자스 지역에서 새로운 공세를 감행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이 공세들은 당시 독일군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활력마저 갉아먹으며, 동부전선을 지탱할 여력을 잃게 만들었다.
동부전선의 절박한 요구
남은 모든 예비 병력이 서부, 즉 파멸을 향해 흘러가는 동안 동부전선에는 최소한의 증원만이 배당되었다. 소련군은 이미 독일군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병력을 그곳에 집결시켜 놓은 상태였다.
당시 육군총사령부(OKH) 참모총장 하인츠 구데리안 대장이 내놓은 유일하게 합리적인 방안은 기동전을 벌이며 탄력방어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정신병원행 명령
동부전선 정보 책임자 라인하르트 겔렌 중장이 소련군의 공세 준비 규모를 상세히 담은 보고서를 올리자, 히틀러는 그것을 위조 문서라 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겔렌을 정신병원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몽골 시대 이래 최대의 허풍이라는 게 이해가 안 됩니까?"라고 히틀러는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구데리안은 이 '논거'에 설득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다면 저도 정신병원에 함께 보내주십시오. 저는 겔렌의 보고서에 완전히 동의하니까요"라고 답했다.
결국 겔렌은 정신병원행을 모면했지만, 독일 전선은 붕괴를 피하지 못했다. 구데리안이 히틀러에게 정확히 예언했던 대로, 전선은 "첫 번째 타격에 카드로 지은 집처럼 무너져 내렸다."
비스와강에서 오더강으로: 압도적인 소련의 대공세
1945년 1월 개시된 비스와-오더 대공세에서 주코프 원수(제1벨라루시아 전선군)와 코네프 원수(제1우크라이나 전선군)는 다음과 같은 병력을 전장에 투입했다.
- 163개 보병사단, 약 220만 3천 명의 병력
- 전차 4,500대
- 돌격포 2,500문
- 76mm 구경 이상 야포 13,800문
- 박격포 14,800문
- 대전차포 5,000문
- '카튜샤' 다연장 로켓포 2,200문
- 직접 지원 항공기 5,000기 이상
독일군 진지는 말 그대로 분쇄되었다. 구데리안이 간신히 모은 소규모 예비대가 재앙의 규모를 줄이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히틀러가 또다시 재앙적으로 개입하여 예비대를 전선에 너무 가깝게 집중 배치하라고 명령했고, 그 결과 예비대는 적의 초기 공격 속에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소진되고 말았다.
무너진 중부 전선
발트 해안과 헝가리 등 전선 양 끝단의 독일군만이 완강한 저항을 계속 이어갔다. 동부전선의 중앙 구획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붕괴했다. 소련군의 거대한 종대는 지나가는 길목마다 불과 피의 흔적을 남겼다. 마치 야만적인 전사 무리가 다시 한번 로마 제국을 침공한 듯한 광경이었다.
히틀러 역시 과거 '러시아인'을 야만인이라 부르며 이런 비유를 자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제 독일의 땅과 독일 국민이, 국방군이 소련의 민간인과 포로들에게 반복적으로 저질렀던 만행의 대가를 같은 화폐로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의 독재자는 분노에 사로잡혀 몸부림쳤다.
이 대공세로 소련군은 불과 몇 주 만에 베를린에서 약 70km 떨어진 오더강 선에 도달했다. 제3제국의 운명은 사실상 이때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