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갑사단 클라우제비츠(Panzer-Division Clausewitz)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군이 창설한 마지막 부대 중 하나였다. 1945년 4월 6일, H 집단군(Heeresgruppe H)의 지휘 아래 당시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과 자재를 총동원해 편성이 시작되었다.
급조된 부대의 탄생
사단의 참모부와 일부 전투 요소는 소련군에 의해 해체된 임시 편성 부대인 홀슈타인(Holstein) 군에서 넘어왔다. 클라우제비츠에는 또한 루르 지역에서 궤멸당한 제106 기갑여단 '펠트헤렌할레(Feldherrnhalle)'의 잔존 병력과 베르겐 훈련학교 출신 제1기갑연대 펠트헤렌할레 제2여단이 배속되었다.
그 외에도 척후병 기갑 보충 훈련 연대 펠트헤렌할레, 제42 기갑척후병 연대(SGPa), 돌격소총 중대 '그로스도이칠란트(Großdeutschland)', 그리고 기갑 훈련학교 소속의 여러 부대가 사단에 배속되었다.
화려한 명칭 뒤에 숨긴 현실
그러나 인상적인 부대 명칭에도 불구하고, 특히 전차와 차량의 부족은 극심했다. 하위 부대가 이론상 정원의 30%를 확보하는 경우조차 드물 정도였다. 사단 병력은 주로 히틀러유겐트 출신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만큼 사기는 특출나게 높았다.
결국 사단은 기갑연대 '클라우제비츠', 제2 펠트헤렌할레 사단, 제1 SSG 클라우제비츠, 제2 SSG 클라우제비츠, 그리고 구축전차 대대 '클라우제비츠' 등의 편제를 갖추게 되었다.
베를린 구원 작전과 최후의 전투
이 사단은 원래 미군을 상대하던 발터 벵크(Walter Wenck) 장군의 제12군 예하에 배속되었으나, 히틀러의 직접 명령에 따라 베를린 구원 작전에 긴급 투입되었다.
클라우제비츠는 영웅적인 전투를 벌였고, 소련군에게 포위된 독일 제9군 일부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베를린에서 불과 30km 거리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압도적인 물량 우위 앞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다.
이후 사단은 서부 전선으로 방향을 돌렸다. 당시 양 전선은 이미 크게 벌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사단은 미군과 영국 제2군 병력과 교전하면서 튀링겐 지방 하르츠 산맥一带의 독일군이 포위당하지 않도록 저지 임무를 수행했다.
병사들 누구나 전쟁의 패배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빼어난 전투 기량을 발휘하며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결국 사단의 잔존 병력은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에서 포위되어 해체되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15일
기갑사단 클라우제비츠는 1945년 4월 21일 공식적으로 소멸했다. 겨우 15일이라는 짧은 생애였지만, 그 모든 시간이 치열한 전투로 가득 차 있었다.
사단의 남은 병력은 지휘관 마르틴 운라인(Martin Unrein) 중장과 함께 연합군에 항복하며 짧은 역사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