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했던 2006년, 아프가니스탄 전선
2006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우던 서방 군인들에게도 불안한 해였습니다. 파키스탄 국경 인근, 칸다하르 남서부의 판주와이(Panjwai) 지역에서는 봄부터 여름까지 격렬한 전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초가을이 되자 이 지역의 작전이 재개되었고, 특히 프린세스 패트리샤 캐나다 경보병 연대(PPCLI)와 왕립 캐나다 연대(RCR)가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탈레반은 이미 2004년부터 핵심 도시 칸다하르를 봉쇄하겠다는 목표로 이 일대에 병력을 집결시켜 왔습니다. 칸다하르 주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수백 개의 마을과 산악·계곡 지형이 뒤섞여 게릴라전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2005년 말, 탈레반은 매복 공격과 폭탄 테러로 전국 각지에서 활동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동시에 칸다하르에서 불과 60km 떨어진 판주와이 지역에서는 강력한 거점 구축에 착수했습니다.
약 100km에 달하는 탈레반의 정규 전선
항공 정찰 결과, 탈레반은 후퇴할 생각이 없으며 거점을 끝까지 사수할 결의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실제로 탈레반은 전투 진지, 중화기 진지, 통신 참호, 물자 창고, 지휘소를 갖춘 길이 약 100km의 정규 전선을 구축했고, 이 진지에는 약 12,000명의 탈레반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무렵, 두 개의 캐나다 부대가 미군을 교체하기 위해 이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캐나다군은 적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고, 주둔을 마친 직후 전진 진지는 박격포와 포병 화력의 엄호를 받는 탈레반의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탈레반은 필사적인 공세를 퍼부었지만, 캐나다군은 버텨냈습니다. '언클 릭(Uncle Rick)'으로 불린 캐나다군 총사령관 릭 힐리어(Rick Hillier)는 이 지역의 탈레반을 무력화하고 자국군에 가해지는 압박을 덜기 위해 즉각적이고 강력한 반격 작전을 개시하라고 나토에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한편 새로 취임한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는 당시 기갑 부대로 개편된 유명한 포트 개리 호스 연대(Fort Garry Horse)를 비롯한 물자와 증원 병력을 파견해 아프가니스탄 주둔 캐나다군을 강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메두사 작전'의 개시
이에 따라 코드명 '메두사 작전(Operation Medusa)'이라는 탈레반 공격 작전이 확정되었습니다. 캐나다 부대 2개 보병 대대와 1개 전차 대대는 탈레반 방어선의 중심을 공격해 돌파한 뒤, 적 부대를 측면에서 포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캐나다군의 좌우 측면은 영국 해병 소규모 분견대, 미군 네이비 실(SEAL), 그리고 일부 네덜란드 병력이 지원했습니다. 2006년 9월 2일 새벽,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100여 대의 항공기와 헬리콥터, 그리고 포병 화력의 지원을 받은 캐나다군은 적의 광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첫 타격으로 적 진지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단계에서 최소 200명의 탈레반이 사망하고 80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영국 님로드 MR2(Nimrod MR2) 정찰기가 추락해 승무원 14명 전원이 목숨을 잃는 비극도 함께했습니다. 일부 자료는 영국군이 탈레반에게 격추된 치누크 헬리콥터에 탑승하고 있었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특히 파스물(Pasmul) 지역의 요새화된 마을들을 확보하는 전투에서 RCR C중대는 혹독한 저항에 부딪혀 4명이 전사하고 9명이 부상당했으며, 차량 여러 대가 파괴되었습니다. 캐나다군이 돌파구 양옆의 탈레반 병력을 포위하려는 가운데 전투는 계속해서 치열하게 이어졌습니다.
유감스러운 오인 사격과 전투의 격화
그러나 9월 4일, 캐나다군은 미군 항공기의 오인 사격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고를 겪었습니다. 병사 1명이 전사하고 최소 30명이 부상당했으며, 이 가운데 5명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최소 51명의 탈레반이 항공기 사격과 캐나다·네덜란드 포병 화력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캐나다군은 이 시점에서 최소 700명의 탈레반을 포위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40명의 탈레반과 최소 10명의 민간인이 나토 항공기와 포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캐나다군 역시 박격포 사격으로 5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이후 며칠간 전투는 다시 격화되었고, 그 결과 92명의 탈레반이 추가로 사망했는데, 이들 상당수는 캐나다 저격수의 손에 쓰러졌습니다.
작전의 종결과 양측의 피해
포위 작전은 계속되었습니다. 탈레반은 파라(Farah) 주에서 양동 공격으로 맞서려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캐나다군은 9월 17일까지 공격을 지속했고, 결국 탈레반은 거점을 버리고 후퇴했습니다.
이 작전에서 캐나다군은 14명이 전사하고 40명 이상이 부상당했습니다. 또한 미군 1명, 네덜란드군 1명, 아프간 군인 3명, 그리고 앞서 언급한 영국군 14명도 생명을 잃었습니다. 탈레반은 최소 2,000명이 사망하고 400명이 포로로 잡히며 메두사 작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