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터키군 대학살로 끝난 카굴 전투, 승리를 이끈 그리스인 포수 멜리시노스

터키군 대학살로 끝난 카굴 전투, 승리를 이끈 그리스인 포수 멜리시노스

잊혀진 유럽사의 분수령, 카굴 전투

1770년 7월 21일, 오늘날 몰도바의 카후르(Cahul) 인근에서 벌어진 카굴 전투는 1768~1774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은 물론 유럽 전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투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이곳에서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압도적으로 궤멸당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욱 주목받지 못한 것은 러시아의 대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그리스인, 러시아군 총포병장 페트로스 멜리시노스(Petros Melissinos) 장군의 존재다.

압도적인 병력 차이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은 당시까지 별다른 결실 없이 2년간 교전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표트르 루먄체프(Pyotr Rumyantsev)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군이 몰다비아로 진격했다. 러시아군의 병력은 3만 8천 명, 대포 118문이었다.

반면 맞서는 오스만군은 보병 4만 5천 명과 기병 3만 명으로 구성된 7만 5천 명의 대군이었고, 여기에 최소 8만 명(일부 자료는 10만 명으로 추정)의 타타르 기병까지 합세해 있었다. 양군은 1770년 7월 21일 카굴 일대에서 정면으로 조우했다.

공격을 택한 루먄체프

기병 전력에서 터키가 압도적으로 우위한 상황 속에서도 러시아군 사령관은 과감히 공격을 결심했다. 이 결정에는 보병과 포병의 긴밀한 협동 작전이라면 터키군을 반드시 격파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멜리시노스가 큰 힘을 실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 보병은 약 8천 명씩 네 개의 대형 방진(스퀘어)을 이루었다. 각 방진 안에는 연대 포병이 배치되었고, 기병은 방진 뒤편에 예비대로 위치했다. 이렇게 군기를 높이 든 채 러시아군은 진격을 개시했다.

대학살의 시작

오스만군 사령관 알바니아계 이자바데 할릴 파샤(Izavade Halil Pasha)는 즉시 기병을 진격하는 러시아군에게 풀어놓았다. 그러나 그의 기병들은 러시아 보병의 일제 사격과 멜리시노스의 포격 세례 앞에서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 터키군이 워낙 빽빽하게 몰려 있었기에 포탄 하나하나가 수십 명의 병사와 말을 산화시켰다.

이런 가운데서도 러시아군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할릴 파샤는 보병까지 전투에 투입했고, 터키군은 잠시 러시아 방진 하나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멜리시노스가 경포들을 신속히 집결시켜 근거리에서 공격해오는 터키군을 쓸어버리면서 위기는 극복되었다.

근접 거리에서 러시아 대포가 발사하는 산탄(캐니스터), 즉 머스킷 탄환부터 쇠사슬 파편에 이르기까지 죽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은 탄약을 퍼붙으며 터키 보병은 수백 명씩 쓰러져갔다.

러시아군은 피로 물들고 토막 난 터키군 시신 위를 밟으며 서서히 진격해 마침내 터키 진영 앞에 도달했다. 참담한 피해와 이에 따른 사기 저하, 그리고 타타르 기병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켜본 터키군은 더 이상 러시아군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고, 곧 진영이 함락되었다.

압도적인 승리

러시아군은 터키군의 대포 130문까지 노획했다. 승자의 피해는 미미해 사망·부상자가 1,000~1,500명에 불과했다. 반면 터키군의 피해는 약 2만 명에 달했다.

전투 후 터키군은 이 지역을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이즈마일(이스마일리), 킬리야, 아케르만, 브라일라 등 요새들을 차례로 상실했다. 이 대승은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축하받았으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Frederick the Great)마저 러시아의 승리를 축하했다.

승리의 설계자, 페트로스 멜리시노스

터키군 대학살로 끝난 카굴 전투, 승리를 이끈 그리스인 포수 멜리시노스

▲ 러시아군의 그리스인 장군, 페트로스 멜리시노스

승리의 선구자였던 페트로스 멜리시노스는 1726년 그리스 케팔로니아(Kefalonia) 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훗날 러시아로 이주했다. 14세의 어린 페트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7년 전쟁에 참전했다. 1759년에는 소령 계급으로 포병 부대로 전속되었다.

카굴 전투 당시 그는 대령이었으며, 승리 후 중장으로 진급했다. 그는 또한 호틴(Khotin) 전투와 라르가 강(Larga River) 전투에서 러시아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는데, 이곳에서 그는 며칠 뒤 카굴에서 구사한 것과 동일한 전술을 이미 적용하고 있었다.

그는 예카테리나 2세(대제)로부터 훈장을 받았으며, '그 시대 최고의 포병'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는 1797년, 현역 장군 계급으로 복무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터키군 대학살로 끝난 카굴 전투, 승리를 이끈 그리스인 포수 멜리시노스

▲ 카굴 전투에서 러시아 보병 방진을 묘사한 미니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