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무트 폰 몰트케는 누구인가
헬무트 요한 루트비히 폰 몰트케(Helmuth Johann Ludwig von Moltke)는 1848년 5월 25일 메클렌부르크 지방의 게르스도르프에서 태어나 1916년 6월 18일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난 독일의 군인입니다.
그는 프로이센 최고의 군사 지도자로 손꼽히는 헬무트 카를 베른하르트 폰 몰트케(1800~1891)의 조카였으며, 흔히 '소 몰트케(Moltke the Younger)'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초년 시절과 군 경력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했을 때, 몰트케는 제7척탄병 연대에서 복무하며 눈부신 용맹성을 보여주었고, 이 공로로 공식 표창을 받았습니다.
이후 1906년부터 1914년까지 독일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며 선배들이 구상해온 슐리펜 계획(Schlieffen Plan)을 실제 전쟁 수행 계획으로 다듬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초기의 결정적 국면인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이 좌절하자, 그는 지휘관직에서 물러나 에리히 폰 팔켄하인(Erich von Falkenhayn)에게 자리를 내려주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예방 전쟁 노선
몰트케는 유럽 대륙에서 독일의 패권이 미래에 위태로워질 것을 깊이 우려했습니다. 특히 막대한 인구와 급성장하는 산업력을 바탕으로 힘을 키워가는 러시아를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겼고, 참모총장에 취임한 이후부터 러시아의 잠재력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전에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예방 전쟁론의 강경한 지지자였습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으로 촉발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간의 외교적 위기는 그에게 반슬라브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절호의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몰트케와 독일 참모본부는 오스트리아 동맹국을 돕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러시아와 그 동맹국인 프랑스와의 적대 행위를 의도적으로 촉발시켰고, 이 과정은 빠르게 확전되어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참화로 번졌습니다.
역사적 평가
당대 최고 권력자들, 특히 황제 빌헬름 2세마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묘히 조종하고 이용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몰트케 장군은, 오늘날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핵심적인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