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열대 태평양의 섬들)에 걸쳐 있는 범대륙 국가입니다. 인도의 푸라나 문헌에서는 이곳을 '드비판타라 바라트(Dwipantara Bharat)', 즉 '바다 건너의 인도'라 불렀습니다. 유럽의 역사학자들과 여행가들이 이 땅을 '아시아의 인도'처럼 들리는 인도네시아라고 명명한 것도 이 때문이며, 인도네시아 주민들 역시 훗날 같은 이름을 받아들였습니다.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 시기에는 이 군도가 '동인도제도(East Indies)'라 불렸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동남아시아 최대의 국가로,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말레이시아(구 말라야)와 육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필리핀, 호주, 인도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와는 바다를 통해 마주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17,508개의 섬을 영토로 하는 나라이지만, 그중 상당수는 아직 이름조차 없습니다. 최근 UN은 인도네시아에 섬의 목록과 명칭을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약 2억 3천만 명으로 세계 4위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또한 2,000개가 넘는 문화 집단이 공존하는 곳으로,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도 이 섬들의 유서 깊은 역사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리학자, 역사학자, 과학자들의 연구와 고대 인도 문헌에 따르면, 동인도제도는 한때 아시아에서 호주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지질학적 변동으로 인해 초승달 모양으로 갈라져 흩어졌는데, 그중 자바, 수마트라, 발리, 보르네오가 가장 큰 섬이며 나머지는 비교적 작은 편입니다. 인도 신화 문학의 기록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섬들의 관계를 라마야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인도의 지리적 범위는 잠부드비파(인도)에서 시작해 실라 섬(스리랑카), 샴(태국), 야바드비파(자바), 스와르나드비파(수마트라), 말레이 섬(말레이시아), 샹카드비파(보르네오), 발리, 그리고 안드라프라데시(호주)에 이르렀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말레이시아라 불리는 말레이 반도, 즉 말라야는 캄보디아(캄푸치아)와는 별개의 나라입니다.
당시 참파 왕국의 섬들은 현재 베트남과 캄보디아(캄푸치아)로 나뉘어 있으며, 산스크리트어는 오늘날에도 이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시대 인도의 왕들은 더 먼 섬들까지 정복했는데, 여기에는 쿠샤드비파(아프리카)와 바라하드비파(마다가스카르)도 포함됩니다. 라마야나 이전부터 서기 7세기 이슬람의 부상에 이르기까지 이 섬들 대부분은 인도의 영향권에 속했으며, 주민들은 힌두교 신자였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현재 아프리카 대륙 남동쪽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큰 섬이자 독립 국가입니다.
발미키 라마야나에 기록된 일곱 섬
발미키 라마야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Yatravanto yavadvipaḥ saptarajyopashobhitaḥ.'
즉, 야바드비파에는 일곱 개의 왕국이 빛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야바드비파(자바)는 당시 인도 본토와 충분히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며, 근해에는 여러 섬들이 있었고 그중 여섯~일곱 개는 인간 정착지로서 두드러진 위상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유 푸라나에 나오는 여섯 섬
바유 푸라나의 한 구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앙가드비파, 야바드비파, 말레이드비파, 샹카드비파, 쿠샤드비파, 바라하드비파. 이처럼 여섯 섬이 묘사되니, 인도 주변은 모두 섬나라이며 남쪽으로 매우 광활하게 뻗어 있다.'
즉, 앙가 섬, 야바 섬, 말레이 섬, 샹카 섬, 쿠샤 섬, 바라하 섬 등이 인도의 섬들이며, 남쪽으로 멀리 뻗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시기 발리 섬 역시 인도 아리안족이 정착하여 마누법전(마누스므리티)을 기반으로 사회 질서와 사법 체계를 확립한 섬 사슬 중 하나였습니다.
랑카에 관한 신화적 믿음
랑카는 현재 실론(Ceylon), 즉 신할라어의 약칭으로 불리는 섬입니다. 신화 시대에 랑카는 신할라 섬이라고도 불렸으며, 랑카로 지칭된 영역에는 말라야와 수마트라의 땅도 포함되었습니다. 브라흐만다 푸라나는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그렇게 말라야 섬이 잘 덮여 있다. 늘 기쁨과 번영이 가득한 위대한 도시 랑카.'
이 구절은 브라흐만다 푸라나가 편찬된 시대에 말라야가 오늘날 랑카가 인도 옆에 있는 것처럼 랑카 바로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수마트라 섬 북동부 산맥 근처 해안에는 지금도 소니-랑카(Soni-Lanka)라 불리는 곳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는 대량의 금이 산출되었습니다. 이 금은 처음에는 야크샤족이, 이후에는 라크샤사족이 차지했습니다. 나라다 부분에는 이런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을 위해, 신을 보기 위해 가난한 왕과 인간들이 이곳을 찾으리라. 그들은 악마를 두려워하며 떠나면서도 언제나 다시 올 것이다.'
즉, 칼리유가에는 왕과 백성들이 가난해져 탐욕 때문에 이곳을 끊임없이 찾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랑카의 왕 라바나의 할아버지 수말리는 비슈누 신에게 악마들이 멸절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랑카를 떠나 지하세계로 들어갔다고 전해집니다. 이 지하세계의 섬이 바로 자바-수마트라-발리로 여겨집니다. 이 사건의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아차리야 차투르세나가 이 주제에 관해 심도 있게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약 7천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이 섬들에는 라마야나의 일화를 새긴 수천 년 된 조각상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수마트라 섬은 인도 신화에서 황금 섬, 곧 앙가드비파라 불리며 방대한 금광이 있던 땅입니다. 야크샤 종족은 스와르나드비파(앙가드비파라고도 함)에서 금을 가져와 신할라 드비파(랑카)에 보관했고, 야크샤의 왕 쿠베라가 이 재보를 지켰습니다.
악마의 왕 라바나는 당시 안드랄라야(Andhralaya)라 불리던 호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라바나는 안드랄라야에서 출발해 랑카를 침공, 랑카의 왕 쿠베라를 격파하고 황금 랑카를 손에 넣었으며, 그의 꽃 비행기마저 빼앗았습니다. 그 후 악마들이 다시 랑카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쿠베라와 라바나는 모두 비슈라바의 아들이었습니다. 발리와 자바 섬에서는 오늘날에도 악마를 연상시키는 조각상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으며, 특히 발리 섬에는 괴물 형상의 거대 조각상을 전시하는 대형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조각상들의 존재는 인도 신화 문학에 묘사된 악마들과 이 섬들의 깊은 연관성을 뒷받침합니다.
보르네오의 힌두 문화
샹카드비파(보르네오)에서 힌두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세기경입니다. 서기 4세기에는 힌두 왕들이 보르네오에 권력을 세웠으며, 이 시기의 비문들은 당시 보르네오에 베다 종교가 존재했음을 증언합니다. 서기 5세기에는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섬이 자바의 샤일렌드라 왕조의 통치 아래 들어갔습니다. 보르네오의 유적에서는 시바 신과 부처의 조각상이 발견되었고, 목조 사원의 흔적도 확인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보르네오의 건축과 예술 곳곳에서 인도의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