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프리드리히 대왕 휘하 최정예 자유군단, 당젤렐리 군단(Freikorps d'Angelelli)의 전사(戰史)

프리드리히 대왕 휘하 최정예 자유군단, 당젤렐리 군단(Freikorps d Angelelli)의 전사(戰史)

7년전쟁(1756~1763) 기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경보병과 선열보병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자유군단(Freikorps)'의 편성을 허가했습니다. 이 부대들은 지원병과 탈영병, 그리고 모집 가능한 모든 병력으로 구성되었기에 질이 천차만별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당젤렐리 군단은 손꼽히는 정예 부대였습니다.

당젤렐리 군단의 창설

자유군단 당젤렐리는 1756년 창설되었습니다. 초기에는 5개 중대로 이루어진 단일 대대였으며, 각 중대는 104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기에 1파운드급 초경량 포 2문이 배속되었습니다. 1758년에는 대대 규모가 811명으로 확대되었고, 1759~1760년 사이에는 제2대대가 신설되었습니다.

이 군단을 조직한 인물은 독일계 이탈리아인 출신 대령, 훗날 중장으로 진급한 루트비히 마르키스 폰 당젤렐리 데 말베치(Ludwig Marquis d'Angelelli de Malvezi)였습니다.

브레슬라우 전투에서의 활약

군단의 첫 임무는 1757년 5월 2일 보급 물자 호송이었습니다. 같은 해 11월 22일, 이 대대는 브레슬라우(Breslau)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자신들보다 세 배나 많은 오스트리아 정예 척탄병의 공격에 맞서 클라인부르크(Kleinburg) 마을을 몇 시간 동안이나 사수한 것입니다. 후퇴를 강요받았을 때에도 불타는 마을에서 불과 짧은 거리 뒤편에 새 방어선을 구축하고 영웅적으로 싸워내며 진지를 끝내 지켜냈습니다.

또한 같은 해 12월 5일 벌어진 뤼첸(Lützen) 대전투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습니다. 프로이센군에 승리를 안겨준 이 결정적 전투에 참전하여, 특히 프로이센 기병대의 돌격을 밀도 높은 화력 지원으로 완벽하게 뒷받침했습니다.

고크키르헨의 패배와 부대 재편

그러나 1758년 3월, 대대는 오스트리아 경부대의 기습을 받아 병사 51명과 포 2문을 잃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프리드리히 대왕이 오스트리아군에게 기습당해 참패한 고크키르헨(Hochkirch) 전투에도 참전했으나, 이 과정에서 막대한 사상자를 냈습니다.

이후 군단은 재편성되었고, 3파운드급 호위포로 무장을 개선했으며 제2대대도 새롭게 창설되었습니다.

종전까지의 전역과 해체

제1대대는 1760년 란데스후트(Landeshut) 전투에 참여한 뒤 해체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잔존 병력은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갔고, 러시아군에게 포위된 발트해 항구 도시 콜베르크(Kolberg)의 포위 해제 작전에 참가했습니다. 이후 러시아군에 빼앗긴 베를린 탈환 작전에도 투입되었습니다.

1761년에는 두 대대가 통합된 상태로 작전을 수행하며, 프리드리히 대왕의 남동생이자 탁월한 장수였던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Prince Henry) 군단에 배속되었습니다. 제2대대는 프랑스군과의 교전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군단은 종전 시점까지 전투를 계속했고, 전쟁이 끝나면서 해체되어 병사들은 프로이센 정규군에 흡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