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피트 늪지 작전(Pripiatsümpfe)'은 1941년 7월부터 8월까지 프리피트 늪지 일대에서 진행된, 나치 독일이 소련 영토에서 감행한 최초의 대규모 '청산 작전'이었다. 수천 명의 민간인이 그 희생자가 되었으며,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직후 시작된 이 작전은 독일 점령 하의 소련 지역을 넘어 유대인 계획적 말살을 목표로 한 최초의 조직적 작전이기도 했다.
히믈러가 설계한 학살
작전의 '두뇌'는 친위대(SS) 수장 하인리히 히믈러였다. 제2SS기병여단과 독일 국방군 제162·제252보병사단 일부가 참여했는데, 이 부대들은 평소 살인과는 거리가 먼 임무를 수행하던 부대들이었다. 전체적인 감독은 에리히 폰 데 바흐찰레프스키(Erich von dem Bach-Zelewski) 친위대 상급대장이 맡았다. 그는 악명 높은 전범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끝내 법의 심판대에 서지 못한 인물이다.
'특별 명령'과 학살의 시작
작전은 1941년 7월 28일 시작되었다. 이는 독일의 절멸 정책이 이미 사전에 결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전은 두 단계로 진행되었으며, 제2SS기병여단의 지휘관은 헤르만 페겔라인(Hermann Fegelein) 기병대장이었다. 그는 훗날 히틀러의 처남이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제1·제2SS기병연대로 구성된 기병여단은 7월 28일 프리피트 강 유역의 늪지대 '소탕'을 개시했다. 바로 같은 날, 히믈러는 폰 데 바흐에게 '특별 명령'을 하달했다. 여기에는 독일에 협조적이지 않은 주민들을 체포해 '파르티잔'으로 규정하고, 어떠한 구실도 빌미도 없이 몰살시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명령에 따라 남성은 그 자리에서 총살되고, 여성과 아이들은 추방되며, 가옥은 불태워지고 가축과 식량은 징발되었다. 페겔라인 또한 히믈러의 명령을 전달받고 그것을 한 글자도 어김없이 집행했다. 그는 제1기병연대를 늪지 북쪽에, 제2기병연대를 남쪽에 배치한 뒤, 기병들이 동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며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을 죽이게 했다.
학살에 가담한 특별행동집단 B
친위대는 지역의 마을들을 돌며 '청소'를 진행했다. 학살과 방화, 약탈을 자행하던 두 연대에는 이 지역의 친위대 처형 부대인 특별행동집단 B(Einsatzgruppe B)도 합류해 공범이 되었다. 작전은 이런 방식으로 계속되었고, 독일군이 실질적인 전투를 벌인 것은 이전 포위망을 탈출한 소련군 대대 하나와 교전할 때가 유일했다.
그 소련 대대는 괴멸당했다. 병력 700명이 전사하고 10명만 포로로 잡혔으며, 독일군의 손실은 사상자 23명에 그쳤다.
살육 성과에도 만족하지 못한 히믈러
작전이 종료되었을 때 독일군은 유대인 14,178명, '파르티잔' 1,000명, 소련군 병사 700명을 살해했다고 보고했다. 반면 독일군의 손실은 전사 17명, 부상 36명, 실종 3명에 불과했다.
주목할 점은 히믈러가 이 처참한 살육 성과에조차 만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8월 1일, 14세 이상 모든 유대인 남성을 몰살하라는 제42호 명령을 하달했다. 여성과 아이들은 늪지로 몰아넣어 익사시켰고, 물이 얕아 익사시킬 수 없을 때는 불태워 죽였다. 육군 병력은 이 포위망을 '봉쇄'하는 데 동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