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4:1의 압도적 열세, 그러나 용감한 소수는 강대한 적과 싸웠다

14:1의 압도적 열세, 그러나 용감한 소수는 강대한 적과 싸웠다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 초기에 벌어진 웽기에르스카 구르카(Węgierska Górka) 전투는 압도적인 병력 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한 소수의 용사들이 남긴 기록으로, '폴란드의 테르모필레'라고 불린다.

늦게 시작된 요새화 계획

체코슬로바키아가 지도에서 사라진 뒤, 폴란드의 남부 국경은 독일과 그 동맹국들에게 위협받는 처지가 되었다. 이에 따라 1939년 4월, 폴란드 정부는 해당 지역에 요새화 지대를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계획에는 기관총과 대전차포를 갖춘 소형 벙커 20개를 네 개 지역에 건설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웽기에르스카 구르카였다.

이 지역의 공사는 1939년 6월에야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일군의 침공이 시작될 무렵 완공된 것은 소형 벙커 다섯 개뿐이었고, 이 중 네 곳에만 병력이 배치되었다. 게다가 병력이 주둔한 벙커조차 여러 가지 허점을 안고 있었다. 계획된 상부 포탑은 어디에도 설치되지 않았고, 발전기가 없어 전력 공급과 통신 수단도 갖추지 못했다. 급수 시설 역시 없었으며,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탄약 부족이었다.

1,200명 대 17,000명

네 개의 소형 벙커로 이루어진 진지는 타데우시 세미크(Tadeusz Semik) 대위 휘하 제151요새중대 병력 70명이 방어했다. 여기에 카지미에시 카르코프스키(Kazimierz Karkowski) 소령이 지휘하는 국경수비대 대대가 요새 외곽에 배치되어 방어선을 보완했다.

진지는 야포 2개 중대와 산악포 1개 중대, 그리고 국민방위대 2개 소대의 지원을 받았다. 결국 폴란드군이 이 지역에 투입한 병력은 총 약 1,200명에 불과했다.
반면 이들을 공격한 것은 오토(Ott) 소장이 지휘하고 중포병으로 증강된 독일 제7보병사단으로, 병력은 무려 17,000명이었다. 폴란드군은 14:1의 압도적 열세에 몰린 것이다.

독일군의 공격 개시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30분경, 독일 제7보병사단이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이들의 임무는 이 지역의 취약한 폴란드 방어선을 돌파한 뒤, 웽기에르스카 구르카 일대에서 측면을 방어하던 폴란드 크라쿠프 군(Kraków Army)의 측후방을 타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폴란드 두 개 중대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이 용감한 병사들은 최소 100:1에 달하는 열세에도 불구하고 오후까지 독일군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독일군은 마침내 9월 2일 아침 폴란드 방어진지 앞에 도달해 즉시 공격을 개시했지만, 격퇴당하고 말았다.

이에 오토 소장은 포병과 공군에 "건방진" 폴란드군을 분쇄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준비 사격 후 돌진한 독일 보병은 폴란드군의 화망에 걸려 쓰러졌고, 제자리에 묶여 버렸다. 장갑 차량의 지원을 받은 추가 공격 역시 실패로 돌아갔고, 독일군은 차량 여덟 대를 잃었다. 하지만 다른 전선에서 독일군의 압박이 성과를 거두면서, 해당 지역의 폴란드 행정 당국은 결국 진지 철수를 명령한다.

전달되지 못한 철수 명령

문제는 철수 명령이 웽기에르스카 구르카의 모든 수비대원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통신 두절 속에서 한 개 벙커의 병력, 카르코프스키 대대 소속 중대들, 그리고 포병만이 명령을 받고 철수했다. 한편 철수한 벙커 하나에는 소총만으로 무장한 보병 일곱 명이 남았고, 이들은 다음 날 전투에 다시 합류했다.

독일군이 재차 공격해오자 이 용감한 병사들은 탄약이 바닥날 때까지 싸웠다. 더 이상 도주할 길이 없자 항복했지만, 비열한 적은 포로로 잡은 그들을 학살할 여유마저 부렸다. 나머지 세 개 벙커에서는 전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포병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폴란드 수비대의 처지는 절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또 한 곳의 벙커는 수비병들의 탄약이 떨어지면서 함락되었다. 다음 벙커는 격렬한 전투 끝에, 독일군이 대전차포로 측면을 집중 포격한 뒤에야 함락되었다. 수비대원들은 소총으로 필사적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다 최후를 맞이했다. 독일군은 마지막 벙커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미 진로는 열려 있었고, 그들은 크라쿠프 군 병력을 섬멸하기 위한 진격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생존한 폴란드 병사들은 밤을 틈타 벙커를 빠져나와 아군 진영에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폴란드군은 스스로 약 27명의 사상자를 내는 대가로 적에게 상당한 피해를 안겼다. 병력과 장비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이들의 저항은,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러야 했던 독일군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14:1의 압도적 열세, 그러나 용감한 소수는 강대한 적과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