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에 남을 뻔하지 못했던 작은 전투, 그러나 기적 같은 결과
독일 헤센 지방에서 벌어진 엠스도르프 전투는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면 역사의 깊은 곳에 잊혀졌을 소규모 교전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양측 모두 약 3,000명씩 대등한 병력이 맞붙은 이 전투는, 그러나 군사사에 길이 남을 놀라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1760년 7년전쟁(1756~1763)은 한창 절정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서부 독일에서는 영국군과 그 동맹국들의 부대가 주로 프랑스군과 격돌하고 있었습니다. 엠스도르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헤센카셀 방백 프리드리히가 지휘하는 영국·하노버·헤센 보병 6개 대대, 소수의 경보병과 후사르, 그리고 영국 제15경용기병연대로 구성된 연합군이, 독일 출신 장교 폰 글라우비츠 휘하의 프랑스군 보병 5개 대대와 후사르, 경보병 부대와 맞서게 된 것입니다.
점심시간을 노린 기습
연합군의 목표는 프랑스군의 보급선과 통신망을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연합군은 신중하게 진격을 이어갔고, 마침내 7월 16일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프랑스군을 구성하고 있던 독일인 용병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을 기습한 것입니다. 프랑스군의 후사르는 전투조차 벌여보지 못한 채 즉시 도주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보병 2개 대대는 간신히 전투대형을 갖추었고, 곧바로 상대 6개 대대가 쏟아내는 집중 사격에 내몰리게 됩니다. 폰 글라우비츠는 후퇴를 시도했지만 이미 연합군의 후사르와 경보병이 퇴로를 완전히 끊어 버린 상태였습니다. 동시에 조지 엘리엇 대령이 지휘하는 제15경용기병연대가 프랑스군을 향해 맹렬히 돌격해 들어갔습니다.
기병 연대 하나가 만든 궤멸
지칠 줄 모르는 영국 기병들은 끊임없는 기동을 통해 적 보병 5개 대대를 모두 와해시켰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지만, 프랑스군은 3,000명 중 2,800명을 잃고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습니다.
이 가운데 1,650명은 제15경용기병연대 병력들에게 포로로 잡혔으며, 폰 글라우비츠 장군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반면 연합군의 손실은 186명에 불과했고, 이 중 125명이 제15경용기병연대 소속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연대는 적군 군기 16개를 노획하는 전공까지 세웠습니다.
단 한 개의 기병 연대가 수천 명의 적군을 무너뜨린 엠스도르프 전투는, 오늘날까지도 군사사에서 가장 놀라운 기병 돌격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