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종전 후에도 이어진 총성… 텍셀 섬 봉기, 유럽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전투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소련 출신 포로와 자원병들로 구성된 다수의 부대를 창설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조지아 군단으로, 여기에는 포로 수용소의 비참한 죽음을 피하려던 붉은군대 포로들뿐 아니라 반공주의자와 조지아 독립을 지지하는 이들도 함께 속해 있었습니다.

여왕 타마라 대대

조지아 군단 산하 부대 중 하나가 바로 882 보병대대 '여왕 타마라'였습니다. 이 부대는 약 800명의 조지아인과 400명의 독일인으로 구성되어 요새처럼 방비된 네덜란드 텍셀(Texel) 섬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대대를 이룬 조지아인들은 거의 모두 붉은군대에 복무하다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882 보병대대는 1943년 6월 폴란드에서 창설되었고, 같은 해 9월부터 네덜란드에 주둔했습니다. 1945년 2월에는 텍셀 방면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러나 3월 말, 독일군은 이 대대를 네덜란드 본토로 이동시켜 연합군과 싸우게 하려 들었습니다. 이것이 1945년 4월 5일 밤 조지아인들의 봉기를 촉발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봉기는 5월 20일까지, 즉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2일 후까지 이어졌습니다.

사형 선고받은 자들의 봉기

포로로 잡혀 중위 계급으로 882 대대에 복무하게 된 붉은 공군 비행중대장 샬바 롤라제(Shalva Loladze)의 지휘 아래, 조지아인들은 독일군 대부분이 잠든 사이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그들은 칼, 총검, 쇠창으로 독일군을 습격해 학살했고, 발포하여 경보를 울린 독일 위병들 또한 처형했습니다.

조지아인들은 연합군의 상륙이 예상되는 가운데 네덜란드 레지스탕스와 미리 접촉해 있었습니다. 봉기가 일어나자 네덜란드 레지스탕스도 가담해 도왔지만, 연합군의 상륙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독일군은 이미 패색이 짙다는 것을 알면서도 즉각적인 반격에 나섰습니다.

곧바로 해안포의 엄호 아래 약 2,000명 규모의 제163 해병연대가 섬에 상륙했고, 이후 5주간의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조지아인과 네덜란드인들은 실로 영웅적으로 싸웠습니다. 4월 25일 롤라제가 전사했지만 저항은 계속되었으며, 특히 에이얼란트(Eierland) 지역과 섬의 등대 주변에서 치열하게 이어졌습니다.

포로 없는 전쟁, 종전 후에도 계속된 전투

독일군은 포로를 잡지 않았습니다. 붙잡힌 이들에게 스스로 무덤을 파게 한 뒤 '배신자'라 부르며 처형했습니다. 한편 조지아인들을 몸숨으로 숨겨주려던 섬의 네덜란드 주민들의 헌신과 희생도 있었습니다. 전투는 5월 5일 네덜란드 주둔 독일군이 항복한 뒤에도, 그리고 5월 8일 독일이 항복한 뒤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독일군의 분노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전투는 5월 20일 캐나다군이 마침내 섬에 도착하면서에야 끝났습니다. 이로써 텍셀 전투는 유럽에서 벌어진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전투로 기록되었습니다. 섬은 전쟁의 참화로 유린당해 수십 채의 가옥과 농장이 불탔으며, 이 전투에서 최소 565명의 조지아인, 812명의 독일인, 120명의 네덜란드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비극

228명의 생존 조지아인들을 기다리는 운명 역시 밝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두 소련군에 항복했는데, 이중 26명은 함께 체포된 가족들과 더불어 영원히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시베리아의 굴라크로 끌려갔고, 극소수의 생존자만 1950년대 중반에야 겨우 석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