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배경
1735년, 투르크(오스만 제국)의 동맹국인 크림 타타르족이 러시아 제국 영토를 또다시 유린하며 대규모 약탈을 감행했다. 이것이 러시아가 타타르와 투르크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 전쟁은 여러 국면을 거쳐 1739년에 이르렀고, 독일 출신 원수 부르크하르트 크리스토프 폰 뮌니히(Burkhard Christoph von Münnich)가 지휘하는 러시아군은 현재의 우크라이나-몰도바 국경 지대까지 진격해 있었다.
뮌니히 휘하에는 총 61,000명(이 가운데 전투 병력 48,000명), 야포 85문, 그리고 각 보병 대대에 2문씩 배분되어 직접 화력을 지원하는 경포 약 170문이 있었다.
벨리 파샤와 9만 대군의 방어진
이에 맞선 투르크 장군 벨리 파샤(Veli Pasha)는 작은 마을 스타부차니 인근 고지에서 무려 90,000명의 병력을 모았다. 여기에는 예니체리 20,000명, 같은 수의 스파히(spahi) 기병, 기타 보조 보병, 그리고 다수의 타타르 경기병이 포함되어 있었고, 대형 포 70문도 함께 보유하고 있었다.
벨리는 고지에 강력한 방어진을 구축하는 한편, 수만 명의 타타르 기병을 러시아군의 진격 축선 양측으로 이동시켜 가능하면 포위하고, 최악의 경우라도 피해를 입히고 진격을 교란하려 했다. 주 방어선에는 예니체리와 포병을 중앙에 배치하고, 창병과 보조 부대를 그 좌우 익에 배치하라고 명령했다.
투르크 방어진은 길이 약 5.5km에 달했고 병력 밀집 밀도도 상당히 높았다. 투르크군은 포좌 11개와 삼중 참호선을 구축하고 네보도베치(Nebodovetsi) 마을을 요새화하여 사실상 완벽한 요새 진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면 마지막 2,100m 구간의 공사는 러시아군이 눈앞에 도착할 때까지 끝내 완료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이 온다
러시아군은 거대한 사각대형(카레)을 이루며 이동하며 타타르 기병의 위협을 무시했고, 1739년 8월 27일 오후 작은 강 술라네츠(Sulanets) 강변에 도달했다. 수천 명의 적 기병에게 포위당한 상황에서 벨리는 타타르 기병을 증강하기 위해 정예병을 빼내 버리고, 방어진에는 예니체리와 포병만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뮌니히는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투르크 진지에 접근하던 그는 우익에서 아직 요새화 공사가 진행 중임을 알아차렸다. 뛰어난 군인이었던 뮌니히는 포위 상황에서도 최선책은 공격이라고 판단했다. 그가 세운 계획은 이렇다. 일부 병력이 투르크 우익에 대해 기만 공격을 감행하고, 그 자신은 주력과 함께 적이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강력한 좌익을 공략한다는 것이었다.
기만 공격과 포병전
역시 독일 출신인 중장 구스타프 폰 비렌(Gustav von Biren)이 9,000명의 병력과 34문의 포 및 곡사포를 이끌고 기만 공격을 맡았다. 8월 28일 이른 아침, 러시아군은 준비를 마쳤다. 비렌의 부대는 강을 건너 정면 길이 560m, 측면 약 200m의 대형 사각대형을 형성했고, 정면 앞에 포병을 배치한 뒤 곡사포는 예비로 확보했다.
투르크군은 즉시 포격을 개시했고, 러시아군도 화망으로 응수했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 이 포병전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특히 투르크 포수들은 100발을 쏘고서야 러시아 용기병 한 명의 말을 다치게 하는 데 그쳐 형편없는 실력을 드러냈다. 한편 벨리는 비렌 부대의 모습을 보고 뮌니히의 함정에 그대로 빠져들었다. 러시아의 주공이 자신의 취약한 우익으로 향할 것이라 믿은 그는 좌익에서 우익으로 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콜차크 파샤(Kolchak Pasha) 휘하의 투르크 기병은 강 뒤편에서 대기하던 뮌니히의 부대에 측면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 공격은 쉽게 격퇴되었고, 정오 무렵 뮌니히는 병력을 우측 강변으로 이동시키라 명령했으며 비렌에게도 후퇴를 지시했다. 비렌 부대가 물러나는 것을 본 벨리는 러시아군 전체가 철수했다고 믿고, 심지어 호틴(Khotin)으로 자신이 승리했다는 보고를 서둘러 보냈다. 그러나 그는 곧 실수를 깨닫고, 러시아군이 강을 건너 투르크 좌익 공격을 준비하며 집결하자 병력을 다시 좌익으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겐게 알리 파샤(Genge Ali Pasha)의 타타르군과 콜차크 파샤의 투르크 기병은 도하 지점에서 강을 건너는 러시아군을 다시 공격했으나, 러시아군의 집중 화망 앞에 밀려났다.
녹색 물결의 반격과 결정타
뮌니히는 병력을 세 개의 대형 사각대형으로 편성하라고 명령했다. 우익의 독일 출신 중장 카를 폰 비렌(Karl von Biren)의 부대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든 가장 먼저 강을 건너 근처 고지를 점령함으로써 교두보를 넓히고 나머지 러시아군의 도하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투르크 기병은 분노에 가득 찬 공격을 퍼부었으나 러시아 사각대형 앞에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16시까지 러시아군 전체가 강을 건너 투르크 진지 앞에 도달했다. 뮌니히는 군대를 하나의 거대한 사각대형으로 재편성하고 공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투르크군이 선수를 쳤다. 러시아군이 스타부차니 마을에 닿자 벨리는 13,000명의 예니체리를 투입했고, 동시에 기병에게도 공격을 명령했다. 러시아군은 치열한 보병 사격과 포격으로 이를 받아냈다.
투르크군은 격퇴되었고, 예니체리는 불명예스럽게 도주했다. 러시아군은 전진하여 투르크 진지와 벨리의 모든 대포를 손에 넣었다. 이제 전장에는 투르크·타타르 기병만 남아 필사적으로 러시아군을 저지하려 했지만 허사였고, 러시아 포격은 그들마저 곧 도주하게 만들었다.
압도적 승리, 그리고 붕괴
공황이 만연하여 투르크군은 요새 호틴마저 무혈로 내버려 두고 말았다. 러시아군의 손실은 극히 적었다. 전사 13명, 부상 54명이 전부였다. 반면 투르크군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전사자 수는 1,0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투르크와 동맹군의 사기가 너무나 바닥나 벨리의 군대는 더 이상 조직적인 전력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다.

강을 건너는 러시아군.

러시아 척탄병과 머스킷 총병.

뮌니히 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