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른호르스트 척탄병 사단(Grenadier-Division "Scharnhorst")은 1945년 3월 30일,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선이 종결되기 불과 며칠 전에 편성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이 사단은 전쟁 말기 독일군에서 가장 정예로 꼽히는 대부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며, 마치 패색이 짙은 줄도 모른 듯 영웅적으로 싸우며 소련군의 포위망에서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구출해내는 임무를 수행했다.
잔존 부대와 학생들로 급조된 사단
샤른호르스트 사단은 제167국민척탄병 사단과 제340국민척탄병 사단의 잔존 병력, 다사우 공병학교의 학생들, 제412국민포병군단 소속 인원, 공군(Luftwaffe) 출신 병력, 그리고 제11군관구 장교 및 부사관 학교의 생도들로 구성되었다. 사단 산하 유탄저격 대대는 '포츠담' 사단에서 차출된 병력이었다.
'척탄병 사단'으로 분류된 이 부대는 3개의 척탄병 연대를 보유했으며, 각 연대는 2개 대대 편제였다. 인원의 약 80%가 예비 장교 후보생과 예비 부사관 후보생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 높은 전투력을 발휘했다.
무장 수준: 최신 무기까지 갖춘 화력
병사들은 K98 볼트액션 소총부터 StG44 돌격소총, MG34와 MG42 기관총, 판처파우스트와 판처슈렉(독일판 바주카) 대전차 로켓 발사기에 이르기까지 당시 사용 가능한 거의 모든 개인화기를 장비하고 있었다. 여기에 박격포와 더불어 사단 포병연대에는 대전차포, (소수의) 대공포, 야포가 배치되었다. 특히 사단 예하 대전차대대는 야크판처 38(t) '헤처' 구축전차 7대를 보유하고 있어 기동 대전차 화력도 갖췄다.
엘베 강 방어: 미군의 교두보 확장 저지
사단은 1945년 4월 4일부터 7일 사이에 걸쳐 마그데부르크 남동쪽 지역에 집결을 시작했고, 새롭게 창설된 제12군 예하 제20(SS) 군단에 배속되었다. 제12군의 임무는 엘베 강을 따라 미군의 진격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4월 11일에는 슈투크(StuG) 19문과 슈투하(StuH) 12문을 보유한 제1170돌격포 여단이 증援으로 합류하며 화력이 크게 보강되었다.
이 돌격포 여단은 제1 샤른호르스트 척탄병 연대와 함께 미군이 엘베 강 교두보를 확장하려는 시도를 4일 연속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이후 미군은 베를린을 소련에 넘겨주라는 명령을 받으면서 더 이상 공세를 재개하지 않았다.
명령의 전환: 베를린으로의 진군
그러나 같은 시기, 동쪽 전선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소련군의 대공세로 독일 제9군의 방어선이 돌파당했고, 남쪽 방면의 독일군 진지마저 뚫리면서 제9군과 베를린 자체가 포위될 위기에 처했다.
4월 22일, 제9군이 완전히 고립·포위되자 히틀러 충실했던 카이텔 원수는 제12군을 엘베 강 전선에서 베를린 방면으로 이동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카이텔은 곧바로 제12군 사령부로 향해 히틀러의 명령을 직접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명령의 요지는 명확했다. 제12군은 등을 돌려 서쪽의 미군을 뒤로하고 동진하여, 포위된 부셔(Busse) 장군의 제9군과 합류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군이 연합하여 소련군 전선을 돌파해 베를린 구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벵크의 현실적 선택: 구원의 창
카이텔의 방문을 받은 벵크(Wenck) 장군은 '총통'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벵크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지휘하는 병력만으로는 소련군의 파괴적인 공세에 정면으로 맞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20(SS) 군단을 베를린 방향으로 이동시키되, 그 목적을 베를린 탈환이 아닌 포위된 제9군과 수천 명의 민간인을 위한 탈출로를 열어주는 데 두었다.
이 작전의 선봉, 즉 창끝에 섰던 부대가 바로 미군 상대로 훌륭한 전과를 세웠던 '샤른호르스트' 사단이었다.
마지막까지 강을 건너는 병사들을 지키다
샤른호르스트 사단은 다시 한번 영웅적인 전투를 펼쳤다. 사단은 제9군 일부 병력과 수천 명의 민간인을 성공적으로 구출해냈으며, 건널 수 있는 이들이 모두 엘베 강을 건널 때까지 강 동안의 독일군 교두보를 끝까지 방어했다. 강을 마지막으로 건넌 병사들 역시 이 사단의 대원들이었다. 임무를 완수한 사단은 5월 2일 미군에게 항복했다.
사단의 이름과 편제
사단의 이름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 프로이센을 위해 명예를 쌓은 한노버 출신의 걸출한 장군,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에서 따온 것이다. 사단장은 하인리히 괴츠(Heinrich Götz) 중장이 맡았다.
편제는 다음과 같았다.
- 제1, 제2, 제3 샤른호르스트 척탄병 연대
- 샤른호르스트 포병 연대
- 샤른호르스트 대전차 대대
- 샤른호르스트 수색 대대(유탄저격)
- 샤른호르스트 공병 대대
- 전달 중대 및 각종 근무 부대
창설된 지 단 30일 남짓한 기간에도 불구하고, 샤른호르스트 척탄병 사단은 전쟁 말기 독일군이 보여준 몇 안 되는 조직적이고 인도적인 작전 수행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