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콜라 반도 잠수함 충돌 사건: 냉전 이후에도 이어진 미·러 심해 대치

콜라 반도 잠수함 충돌 사건: 냉전 이후에도 이어진 미·러 심해 대치

1993년 3월 20일, 러시아 북방함대의 모항인 세베로모르스크 기지에서 북쪽으로 약 100마일(약 160km) 떨어진 바렌츠해 해역에서 미국 해군의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 USS 그레일링(USS Grayling)과 러시아 해군의 탄도미사일 원자력 잠수함 K-407 노보모스코프스크(Novomoskovsk)가 충돌했습니다. 당시 그레일링은 러시아 잠수함을 은밀히 뒤따르던 중 순간적으로 접촉을 잃었고, 다시 소나로 목표를 재획득했을 때는 두 함정 사이 거리가 불과 0.5마일(약 800m)까지 좁혀져 있어 충돌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사건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연방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열리기 불과 일주일 전에 발생해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배경: 냉전 종식 후에도 이어진 수중 감시

1991년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미 해군에 러시아 핵잠수함 기지에 대한 촘촘한 감시를 계속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는 특히 러시아 통제 하에 남겨진 전략 자산과 관련된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수중 감시 작전은 공식적으로 '홀리 스톤(Holy Stone)' 작전 및 '피너클(Pinnacle)' 작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잠수함 승조원들의 은어로는 '볼라드(Bollard)'라 불렸습니다.

정보 수집 활동에는 러시아 잠수함 통신 케이블 도청, 여전히 운용 중인 구소련 잠수함들이 내는 소음 녹음, 그리고 이후 실시된 잠수함 발사 해상 발사 미사일 시험 관찰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1년 만에 반복된 충돌 사고

그보다 앞선 1992년 2월 11일에는 미 해군 공격핵잠수함 배턴루지(USS Baton Rouge)가 세베로모르스크 인근 해역에서 러시아 핵잠수함 K-276 코스트로마와 충돌한 바 있었습니다. 배턴루지의 임무는 해저에 정보 수집용 장비를 설치하거나 회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언론은 해당 잠수함이 러시아 여러 기지 간 무선 통신을 감청하고 있었다고 보도했지만, 러시아 측과 다른 소식통들은 두 함정이 마치 '고양이와 생쥐 놀이'에 가까운 추적전을 벌이던 중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배턴루지는 이 사건 이후 손상된 선체의 수리 비용이 과다하고 핵연료 교체 필요성까지 겹치면서 미 해군 함적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충돌의 순간

제1급 대위 안드레이 불가르코프가 지휘하는 노보모스코프스크는 무르만스크에서 북쪽으로 105해리(194km) 떨어진 해역에서 전투 훈련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훈련 구역의 북쪽 끝에 도달한 노보모스코프스크는 16~18노트(30~33km/h)의 속도로 회항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5분 후, 수심 74m에 이르렀을 때 노보모스코프스크는 충격과 함께 금속이 긁히는 소리를 느꼈습니다. 몇 초 뒤 소나는 근접 해역을 항해하던 외국 잠수함의 소음을 포착했습니다. 한편 그레일링은 해역을 이탈하기 전 러시아 잠수함에 큰 손상이 없는지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조사 결과, 그레일링은 노보모스코프스크의 좌현 쪽에서 약 11~13km 거리를 유지하며 그 위치를 계속 추적해 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노보모스코프스크가 180도 침로 변경을 단행하면서 그레일링은 목표물과의 접촉을 잃었고, 이를 재획득하기 위해 접촉 상실 지점을 향해 8~15노트(15~28km/h)로 가속했습니다.

바렌츠해의 얕은 수심에서 발생하는 파도는 음향 잡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두 잠수함이 정면으로 서로 접근할 때는 거리가 수백 미터까지 좁혀져야 상대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레일링의 패시브 소나가 노보모스코프스크를 감지한 것은 약 1킬로미터(0.54해리) 거리에서였습니다. 거리가 급격히 좁혀지는 가운데 그레일링의 전투 정보 센터(CIC)가 최선의 회피 방안을 결정하는 데 시간을 허비했고, 리처드 셀프(Richard Self) 함장이 침로 변경과 함께 부상하는 방식으로 회피를 시도했으나 그레일링의 관성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결국 그레일링은 노보모스코프스크의 상부 구조물과 충돌했고, 노보모스코프스크의 우현 선수에는 큰 흠집이 남았으며, 미국 잠수함 역시 경미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충돌 후 그레일링은 수리를 마치고 1997년 퇴역할 때까지 현역으로 복무했습니다. 노보모스코프스크 역시 함대로 복귀해 전면 개수를 거쳤으며, 러시아 해군에서 2020년까지 운용될 예정이었습니다.

정치적 파장

1년여 만에 벌어진 미·러 잠수함 간 두 번째 충돌은 클린턴 행정부 내부와 러시아 양측에서 분노의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 해군이 러시아 항만과 기지에 대한 감시를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이 확인된 것은 양국 정상회담 예정일 불과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옐친이 주도하는 개혁을 지지하는 등 모스크바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클린턴은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는 물론, "사건이 의도치 않은 결과로 발생하게 만든" 정치인들에 대한 조사도 요청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클린턴의 발언은 미 해군 고위 지휘부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러나 해군 최고위 지휘관들과 신임 국가안보보좌관 앤서니 레이크의 회의 끝에 잠수함 부대는 바렌츠해에서의 활동을 더 작은 규모로 지속할 수 있도록 승인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아울러 운용 절차를 엄격히 제한하고 잠수함 함장들의 훈련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대대적인 노력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