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에서 무너지던 폴란드, 마지막 저항의 현장
1939년 후시네(Husine)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는 고난에 시달리던 폴란드가 1939년에 치른 마지막 전투 중 하나였습니다. 9월 17일부터 폴란드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과 생존을 걸고 싸우던 중, 소련의 침공까지 받아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마을은 루블린 주 흐루비에주프(Hrubieszów)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부그 강을 건넌 소련 제8소총병군단
1939년 9월 23일, 소련 제8소총병군단이 흐루비에주프 인근에서 부그 강을 도하했습니다. 이 군단은 제44소총병사단과 제81소총병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제44사단은 여단장 알렉세이 비노그라도프(Alexei Vinogradov)가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소련군은 도시를 점령한 뒤 서쪽으로 진격을 이어갔습니다.
소련군은 별다른 저항을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폴란드군의 잔존 병력은 아직 독일군과 교전 중이었고, 자신들 앞에는 즉석에서 급조된 부대들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급조된 폴란드 혼성부대, 약 1,500명
실제로 소련 제44사단이 후시네에서 마주친 것은 바로 그런 부대였습니다. 이들은 은퇴한 비트올트 란율레비치(Witold Ranjulewicz) 소령이 지휘했으며, 제14울란 연대의 잔여 병력으로 구성된 행진부대, 기마경찰대, 보병으로 싸운 화학전 대대의 일부, 그리고 81mm 박격포 부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소련군에 맞선 폴란드군은 총 약 1,500명 규모였습니다.
란율레비치는 전쟁의 패배가 이미 확정되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부하들을 살려 헝가리나 루마니아 영토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련군의 진격이 폴란드군의 길을 차단했습니다. 이에 폴란드 지휘관은 소련군 사이를 빠져나가려 시도했지만, 결국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소련군은 들판 위의 적은 수의 폴란드군을 발견하고 공격을 개시했고, 소련 보병은 즉시 공격 대형을 갖춰 돌격해 왔습니다.
기병 돌격, 소련군을 패닉으로 몰아붙이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폴란드군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박격포로 사격을 가한 뒤, 그들은 말에 올라타 역돌격을 감행했습니다. 폴란드 울란 기병과 경찰들은 끔찍한 함성을 지르며 검을 휘두르며 돌진했습니다.
용감한 적들을 그 자리에서 쓸어누르기만 하면 될 상황이었음에도, 소련군은 오히려 패닉에 빠져 부끄럽게 도주했고, 수십 명씩 폴란드군에게 섬멸당했습니다. 결국 소련 전차의 개입에야 패닉이 진정되었고, 용감한 폴란드군은 격퇴될 수 있었습니다.
탄약이 바닥난 폴란드군, 비참한 결말
곧 폴란드군은 완전히 절박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박격포 포탄은 바닥났고, 대전차 무기는 없었으며, 상대는 수천 명에 달했습니다. 탈출하지 못한 폴란드군은 포로가 되었고, 그들은 소련군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남긴 반면 단 18명의 전사자만을 냈습니다. 또 다른 139명의 폴란드군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냉혹한 포로 학살과 신의 심판
전투가 끝난 후, 소련군은 최소 25명의 폴란드 포로들을 냉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이른바 '위대한 승리'를 거둔 그들은 서쪽으로 계속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신의 심판은 이를 잊지 않았습니다. 제44사단을 이끌었던 소련 여단장 비노그라도프는 이후 핀란드와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1940년 1월 11일 굴욕적으로 처형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