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작은 리히텐슈타인, 1945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빼앗긴 영토와 성들의 반환을 요구하다

작은 리히텐슈타인, 1945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빼앗긴 영토와 성들의 반환을 요구하다

리히텐슈타인, 유럽인권법원에 정식 소송 제기

리히텐슈타인 공국이 1945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의해 강제로 몰수된 영토를 돌려받기 위해 유럽인권법원(ECHR)에 정식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번 소송에서 리히텐슈타인은 약 20만 헥타르(50만 에이커)에 달하는 토지와 유럽 최대급의 성 및 궁전 일부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카트린 에겐베르거(Katrin Eggenberger) 리히텐슈타인 외무장관은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법령의 불법적인 시행과 그로 인한 결과는 우리에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라며 "보상 없는 징발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강하게 밝혔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재산 몰수 배경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가 패망한 뒤, 전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리히텐슈타인 후작 가문과 리히텐슈타인 출신 38개 가문을 '독일인'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재산을 대거 몰수했습니다.

분쟁 대상이 된 토지는 현재 리히텐슈타인 공국 전체 면적의 무려 10배에 달하는 규모로, 웅장한 성과 귀족 저택들이 자리해 있으며 이 중 두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신고딕 양식의 레드니체 성(Lednice Castle)은 몰수되기 전까지 700년 넘게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거처였으며, 발티체 성(Valtice Castle)도 함께 반환 대상에 포함됩니다.

이번 사건에는 후작 가문의 재산 외에도 개인 38명이 연루되어 있으며, 기업 지분과 사업 이익까지 포함됩니다. 에겐베르거 장관은 "이번 사건은 주권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라며 "단순히 저택 때문에 나선 것이 아니라, 사건에 연루된 우리 국민 39명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나라가 작을수록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체코 측의 반박

마르틴 스몰렉(Martin Smolek) 체코 외무차관은 정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스트라스부르의 법원은 유럽인권협약이 체결되기 이전의 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유럽 기구가 심사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한 "권리 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극히 일부 집단, 솔직히 말해 한 명뿐인 사건에 조약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조약 활용 방식"이라며 소송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스몰렉 차관과 에겐베르거 장관 모두 이번 사태가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입니다. 두 나라는 오랜 분쟁 끝에 2009년에야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이번 소송은 사실상 지난 2월 체코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한 항소 성격을 띱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프라하 인근에 위치한 옛 리히텐슈타인 가문 소유 숲 600헥타르의 소유권을 놓고 다툰 사건에서 후작 가문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가문과 공국의 역사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 최대 귀족 왕조 중 하나였습니다. 1918년 합스부르크 왕조가 붕괴하면서 제국은 해체되었고, 여러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 후작들이 소유했던 광대한 땅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건국된 체코슬로바키아에 편입되었습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는 약 300만 명의 주데텐 독일인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안슐루스)된 직후, 빈에 거주하던 후작 프란츠 요제프 2세(Franz Joseph II)는 빈을 떠나 리히텐슈타인으로 영구 이주했습니다. 공국은 전쟁 내내 중립을 유지했으며, 가문은 중앙유럽 여러 지역에서 여전히 중요한 지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프라하에 의해 몰수된 땅은 끝내 풀리지 못한 갈등의 씨앗으로 남아 있습니다.


출처: 스푸트니크(Sputn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