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영웅의 기병 연대, 폴란드 제14 울란 연대… 볼셰비키·독일·소련과 맞선 싸움

영웅의 기병 연대, 폴란드 제14 울란 연대… 볼셰비키·독일·소련과 맞선 싸움

폴란드는 중세 시대부터 기병 전통을 자랑해 온 나라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날개 달린 후사르(Winged Hussars)'가 빈 성벽 앞에서 오스만 튀르크를 격파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1920~1921년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기병은 폴란드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39년에는 지리적으로 서쪽과 동쪽에 마주한 숙적들, 즉 독일과 소련과의 싸움에서 놀라운 영웅성을 보여주었다.

볼셰비키와의 첫 전투

폴란드군에서 가장 유명한 기병 연대 중 하나가 바로 제14 울란(창기병) 연대였다. 이 연대는 1918년, 차르 러시아 군대에서 복무하던 폴란드인들에 의해 창설되었다. 초기에는 단 하나의 스쿼드론(기병 중대)에 불과했으며,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 편에 서서 볼셰비키와 싸웠다. 1918년 8월 부대는 폴란드군 지휘 아래 들어갔고, 4개 스쿼드론 규모의 정식 연대로 재편되었다.

이 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그리스 부대와 함께 작전을 수행한 뒤 1919년 여름 폴란드로 귀환했다. 이후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에서 갈리치아 지역의 볼셰비키와 맞섰다. 특히 우크라이나 볼셰비키에 맞서 용맹하게 싸워 야슬로비에츠(Yasloviec)의 성모 수도원이 파괴되는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 공로로 연대는 성모 마리아를 수호 성인으로 삼게 되었고, 수녀들이 직접 연대기를 제작했다.

1919년 8월, 연대는 '제14 야슬로비에츠 울란 연대'로 공식 명명되었다. 1920년에는 키이우 전투와 같은 해의 코마루프(Komarów) 전투에 참전했으며, 연대기에는 군사 공로 십자장과 군사 공로 훈장이 수여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연대는 리비우(Lwów)에 주둔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 침공에 맞서다

1939년 당시 폴란드 기병 연대는 하나의 지휘부와 4개 기병 스쿼드론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스쿼드론은 3개 소대를 두었다. 여기에 기관총 중대(3개 소대, 소대당 기관총 4정), 대전차 부대, 자전거 부대, 통신 부대, 공병 소대가 배속되어 있었다. 1939년 제14 연대는 포돌리아 기병여단에 배속되었고, 8월 27일 동원되어 독일 침략자들에게 맞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특히 폴란드군이 감행한 유일한 의미 있는 반격으로 꼽히는 유명한 부주라(Bzura) 강 전투에도 참가했다. 이 전투 후 후퇴하던 연대는 9월 17일 고르키(Gorki)에서 다시 한번 영웅적으로 싸웠다. 9월 19일에는 독일군의 바르샤바 포위망을 돌파하고 시내로 진입해 수비대를 증강하는 데 성공했으며, 9월 28일까지 그곳에서 끝까지 저항했다.

망명과 재건, 그리고 최후의 전투

그러나 연대의 모든 병사가 포로로 잡힌 것은 아니었다. 탈출에 성한 병사들은 남동쪽으로 후퇴해 소련군과 계속 싸웠고, 일부는 중립국을 거쳐 프랑스에 도달했다. 연대는 1940년 4월 프랑스에서 재건되었으나 규모는 사령부 수준에 머물렀다. 가능한 한 오래 싸운 끝에 생존자들은 영국으로 피신했고, 제10 기갑기병여단에 합류하면서 부대 명칭도 '제14 기갑기병연대'로 변경되었다. 미제 M4 셔먼 전차로 무장한 이 부대는 독일 본토에서 벌어진 최후의 전투에 참전했다. 연대는 1947년 공식 해산되었다.

지하 저항 세력 속의 제14 연대

1939년 독일 또는 소련의 포로 생활에서 벗어난 다른 병사들은 저항 조직, 특히 국내군(Armia Krajowa, AK)에 합류했다. AK 산하 제14 연대는 827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리비우 일대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1944년 7월 22일부터 27일까지 이 도시에서 독일군에 맞선 봉기에 참여했으나, 이후 많은 대원들이 소련 비밀경찰 NKVD에 체포되었다. 체포를 피한 이들은 적어도 1945년 6월까지 소련에 대한 저항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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