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기군(黑旗軍, 중국어 발음: 헤이치쥔)은 주로 프랑스에 맞서 인도차이나 일대에서 활약한 중국계 비정규 병력이다. 검은 깃발을 군기로 사용했다 하여 '흑기군'이라 불린 이들은 19세기 후반 동남아시아 역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장 세력이었다.
태평천국의 잔재
흑기군의 뿌리는 태평천국 운동(1850~1864)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규모 반란이 청나라에 의해 진압된 뒤인 1864년, 생존한 반란군 상당수는 중국 본토에서 축출되어 베트남 북부의 통킹(톤킨)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들을 이끈 지도자가 바로 유영복(劉永福, 1837~1917)으로, 베트남에서는 '르우 빈푹(Lưu Vinh Phúc)'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안남 조정과의 협력
베트남의 안남(Annam) 조정은 흑기군을 단순한 피난민이 아니라 실질적인 무력으로 활용했다. 홍강(송코이강)과 닷강(송다강, 이른바 '검은 강') 사이 산악 지대에 할거하던 여러 부족 세력을 견제하는 데 흑기군을 동원한 것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영복은 안남 궁정으로부터 공식적인 관직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와의 충돌, 청불전쟁
홍강 유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흑기군은 곧 프랑스의 식민지 확장 야망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1881년 프랑스는 앙리 리비에르(Henri Rivière)가 지휘하는 원정군을 통킹에 파견했고, 이로써 청불전쟁(청프랑스 전쟁, 1881~1885)의 막이 올랐다.
흥미로운 점은 청나라 조정의 태도다. 한때 자신들에게 반기를 들었던 태평천국 잔당이었음에도, 청 조정은 이들이 중국 본토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그 존재를 묵인했고, 나아가 프랑스에 맞서는 전투에서는 제국군과 함께 싸우도록 내버려두었다.
투옌꽝 포위전
흑기군이 남긴 가장 유명한 전과 가운데 하나는 1885년 통킹의 투옌꽝(Tuyên Quang)에서 벌어진 포위전이다. 이 전투에서 흑기군은 요새에 고립된 프랑스군, 특히 외인부대(Légion étrangère) 병력을 오랫동안 포위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이는 소수의 비정규군이 당대 최강의 서구 열강 군대를 상대로 거둔 값진 승리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