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인간의 탈을 쓴 괴물! 스탈린의 대처형자 블로힌, 카틴에서 3분마다 한 명씩 총살하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 스탈린의 대처형자 블로힌, 카틴에서 3분마다 한 명씩 총살하다

바실리 미하일로비치 블로힌(Василий Михайлович Блохин)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도 로마 황제 네로가 굶겨 죽인 사자들보다 더 잔혹했던, 말 그대로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었습니다. 그는 1895년(일부 자료에서는 1887년) 러시아의 작은 마을 시시탈에서 태어났지만, 어떤 가정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차르 러시아 육군에 입대했고, 1921년에는 볼셰비키당과 소련 초기 비밀경찰인 체카(VChK)에 합류하게 됩니다.

바로 이곳에서 그의 살인 행각이 시작되었고, 스탈린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스탈린이 소련의 실권을 잡자 그는 '재능 있는' 살인자 블로힌을 잊지 않았습니다. 스탈린은 그를 체카의 후신인 NKVD(내무인민위원부) 산하 특별처형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중대 규모의 이 부대는 모스크바 루비얀카에 주둔했으며, 명령은 대부분 스탈린 본인에게서 직접 내려왔습니다.

처음에 특별처형대는 스탈린 집권 기간 자행된 무려 82만 8천 건의 처형·살인 전체에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블로힌은 주로 '모스크바 재판'이라 불리는 국가적 날조극 기간에 활약했습니다. 스탈린이 눈엣가시로 여긴 소련공산당(CPSU) 고위 간부들을 그의 손으로 직접 처형했으며, '아버지'가 위협으로 간주한 투하쳅스키 원수 역시 블로힌의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주목할 점은 블로힌이 상사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옛 상관 두 명, 즉 야고다와 예조프를 직접 처형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1936~1940년 스탈린의 더러운 일을 수행하다가 쓸모가 없어진 '내무인민위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공로'를 인정받아 블로힌은 1937년 스탈린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의 수석 암살자가 진정한 '재능'을 발휘한 곳은 1940년 4월의 카틴이었습니다.

카틴… 지워지지 않는 오점

1939년 9월 17일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또 다른 대학살자 히틀러와 함께 폴란드를 분할한 뒤, 스탈린은 폴란드 장교들과 과학자, 고위 행정 관료 등 소련 통치에 위협이 될 만한 폴란드인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렇게 하여 1939년부터 소련의 세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1만 4천 명이 넘는 폴란드인, 대부분이 장교(그중 상당수는 예비역)를 살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블로힌에게는 모스크바 남서부 코젤스크 수용소에 수감된 7천 명의 폴란드인을 '제거'하는 임무가 맡겨졌습니다. 무고한 희생자들은 수용소에서 스몰렌스크로 이송된 뒤, 무리지어 도시 서쪽의 카틴 숲으로 향했습니다. 학살은 스탈린의 명령 제00485호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블로힌은 스스로 24시간에 300건의 살인이라는 '할당량'을 정해놓고 일에 착수했습니다.

희생자들은 먼저 작은 방으로 불려가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그런 다음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방음 처리된 또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서 블로힌의 부하들이 손을 묶고 몸을 붙잡았습니다. 긴 가죽 앞치마와 커다란 가죽 장갑, 가죽 모자를 착용해 피가 튀지 않도록 꾸민 처형자 블로힌은 독일산 발터 2형 권총으로 후두부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독일제 권총을 선택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혹독한 사용에도 견딜 만큼 신뢰성이 높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범죄의 책임을 독일에 전가할 수 있는 완벽한 증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책임전가는 오랫동안 성공을 거듭했습니다. 희생자들이 살해된 후 시신은 트럭에 실려 숲으로 운반되어 길이 10m가 넘는 집단 매장지에 묻혔습니다.

블로힌은 매일 밤 해질녘부터 해 뜨기 직전까지 10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이 공로로 1940년 4월 27일, 그는 소련 최고 훈장 중 하나인 적기훈장을 스탈린으로부터 받았습니다.

28개의 밤 동안 그는 홀로 무고한 7천 명을 살해했으며,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인간'에 의한 집단 살인의 세계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기계처럼 3분에 한 명꼴로 사람을 죽여나갔습니다.

진실은 반세기를 넘게 묻혔다

카틴의 끔찍한 범죄는 1943년, 우연히 발견됩니다. 또 다른 범죄자 히틀러의 독일군이 집단 매장지를 찾아낸 것입니다. 그러자 소련 선전 기구는 이 만행을 독일의 소행으로 둔갑시켰고, 서방 연합국도 동맹 관계를 위해 이 견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소련의 괴뢰국이 된 뒤로는 진실을 말하고 오래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1990년에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카틴, 스타로빌스크, 칼리닌 학살에 관한 문서를 폴란드에 넘겨주면서 진실이 공식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블로힌은 중장으로 진급하여 1953년, 스탈린이 지구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두목'의 후광이 사라지자 블로힌의 입지도 무너졌습니다. 1953년 6월 악명 높은 라브렌티 베리아가 실각하자 그는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의 희생양이 되어 계급과 직위를 모두 잃었습니다. 블로힌은 알코올 의존증에 빠져들었고, 1955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특권을 잃은 슬픔 때문이었을까요?

인간의 탈을 쓴 괴물! 스탈린의 대처형자 블로힌, 카틴에서 3분마다 한 명씩 총살하다인간의 탈을 쓴 괴물! 스탈린의 대처형자 블로힌, 카틴에서 3분마다 한 명씩 총살하다인간의 탈을 쓴 괴물! 스탈린의 대처형자 블로힌, 카틴에서 3분마다 한 명씩 총살하다

'영웅' 블로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