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9월 1일 새벽, 독일의 일방적인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었다. 독일군은 육·해·공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러나 폴란드군은 처음부터 결과가 예정된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용감하게 저항했으며, 짧지만 탁월한 성과를 거둔 반격 작전들도 감행했다. 프라우슈타트(Fraustadt) 기습이 바로 그러한 작전이었다.
국경을 지키던 '대폴란드' 기병여단
대폴란드 기병여단(Wielkopolska Brygada Kawalerii)은 포즈난(Poznań) 방면군 예하 부대로, 슐레지엔 지역의 독일 국경선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다. 여단의 지휘관은 로만 아브라함(Roman Abraham) 준장이었으며, 여단은 제15·16·17 울란(Uhlan) 연대, 제7 기마소총연대, 제7 기마포병연대, 제3 공병중대, 제7 통신중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제55 보병연대 일부 병력이 증원 부대로 배속되었다.
침공 첫날의 교전과 공격 결심
이 여단은 독일군의 침공 첫날부터 침략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맞섰다. 9월 2일 새벽 1시, 아브라함 준장은 자전거 분견대에 인접 숲 지역에 대한 정찰을 명령했다. 아침이 되자 폴란드 공군 정찰기가 정면에는 대규모 독일군이 없다는 정보를 전해왔다.
독일군은 폴란드군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이 방면에 극히 적은 병력만 남겨두고 있었다. 자전거 분견대의 확인 보고까지 받은 아브라함 준장은 부대에 공격 준비를 명령했다. 목표는 국경 너머의 독일 도시 프라우슈타트였다.
레시시 대위의 300인 기습부대
작전의 주력은 에드문트 레시시(Edmund Lessisz) 대위가 지휘하는 제55 보병연대 제2중대였다. 이 중대는 기관총 소대와 경포 소대의 증원을 받았고, 기병 소대, 자전거 소대, 경전차 소대의 지원을 받았다.
주력 병력은 총 300명으로, 병사들은 무장을 갖춘 채 일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출발했으며, 나머지 지원 부대가 뒤따랐다.
첫 교전: 국경 초소 돌파
첫 번째 교전은 그렌츠슈츠(Grenzschutz) 국경 초소에서 벌어졌다. 공격은 콘비츠키(Konwicki) 중위 휘하의 폴란드 소대가 담당했다. 짧은 전투 끝에 생존한 독일 병력은 후퇴했고, 초소는 다량의 전리품과 함께 폴란드군의 손에 들어왔다.
곧이어 두 번째 소대가 또 다른 국경 초소를 점령하고, 독일군 부대가 폴란드 영토 진공을 기다리며 주둔하고 있던 게게르스도르프(Geyersdorf) 마을로 접근했다. 그러나 독일군은 오히려 폴란드군의 기습 사격에 놀라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폴란드군의 TKS 탱켓과 스테판 페르키에비치(Stefan Perkiewicz) 소위가 이끄는 제3소대가 마을에 돌입하자 독일군 진영에는 공황이 번졌다.
독일 영토 안쪽 8km까지 추격
독일군이 완전히 혼란에 빠진 채 버리고 달아난 마을은 함락되었고, 폴란드군은 프라우슈타트 교외까지 진출해 화포로 마을을 포격하며, 적을 독일 영토 안쪽 8km까지 추격했다.
그러나 아브라함 준장은 더 동쪽에서 진격 중인 독일군 주력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부대에 철수를 명령했다. 철수 행군 중에는 의외의 해프닝도 벌어졌다. 독일계 무장 '폴란드' 시민들이 다가오는 부대를 독일군으로 착각하고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들고 환영하며 나선 것이다! 짧은 교환 사격 끝에 이들은 모두 포획되어 경찰에 인계되었다.
이 작전 자체는 전술적·전략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폴란드군의 사기를 크게 북돋았고, 독일군 역시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비주라 강에서 바르샤바까지
'대폴란드' 기병여단은 이후에도 계속 독일군과 싸웠다. 여단은 비주라(Bzura) 대전투에서 영웅적이면서도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다. 9월 11일에는 제11 보병사단과 함께 다시 한번 독일 제24 보병사단을 공격했다. 9월 16일 철수 이후에는 다른 두 개 기병여단과 함께 합동기병여단(Zjednoczona Brygada Kawalerii)을 편성해 아브라함 준장의 지휘를 받았고, 9월 18일에는 독일군의 정예 부대로 이름난 제29 기계화보병사단과 맞서 영웅적으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여단은 바르샤바 시내로 진입해 9월 28일 도시가 항복할 때까지 최후의 저항을 이어갔다.
복수에 처형당한 지휘관
안타깝게도 레시시 대위는 전투 중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원한에 불타는 독일군은 프라우슈타트에서 당한 굴욕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포로들 사이에서 그를 찾아내, 잔혹하게 고문한 끝에 살해했다. 그들의 행위는 참으로 비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