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처진 이스라엘 해군, 그리고 독일의 물러남
1960년대 초, 이스라엘 해군은 인접 아랍국 해군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신형 함정, 특히 미사일 고속정 건조를 결정했다. 처음에는 독일 뤼르센(Lürssen) 조선소가 선정되었으나, 아랍 연맹의 개입 압력에 밀려 독일 정부는 결국 손을 뗐다.
프랑스행, 그리고 금수 조치
그래서 선택된 것이 우회 방안이었다. 함정은 프랑스에서, 엔진은 독일산으로 하여 건조하기로 한 것이다. 1965년 초 이스라엘 승무원들이 프랑스로 파견되었다. 당시 양국 관계는 원만했지만, 1968년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공항 기습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단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이미 함정 대금을 모두 지불한 상태였기 때문에 셰르부르(Cherbourg) 조선소에서의 건조는 계속 진행되었다. 한편 소련이 오사(Osa)급과 코마르(Komar)급 미사일정으로 이집트 해군을 강화하면서, 이스라엘이 이른바 '셰르부르 고속정'을 확보하는 일은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작전 계획과 준비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강경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그 핵심은 모르데차이 리몬(Mordechai Limon) 해군 소장의 계획이었다. 주문한 12척 중 5척은 이미 완성되어 시운전 단계에 들어갈 예정이었고, 이스라엘은 바로 이 시점을 노렸다. 함정들을 프랑스 북서부 셰르부르항에서 동지중해의 하이파까지 몰래 끌고 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파나마에 등록된 껍데기 회사 '스타보트(Starboat)'를 설립했다. 회사는 표면상 노르웨이 자본의 석유 탐사업체로 알려졌으며, 직원 전원이 모사드 요원이었다. 이 회사는 시추 시설 보호를 위해서라는 공식적인 명분으로 이스라엘 함정을 구입하겠다고 프랑스 측에 제안했다. 이미 대금을 지불한 이스라엘과의 협약이 체결되었고, 함정들은 스타보트의 소유가 되었으며, 프랑스 국방장관의 서명까지 받아냈다.
함정에는 표면적으로는 회사의 새 승무원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소수의 이스라엘 선원들이 남았다. 곧이어 80여 명의 이스라엘 해군 병력이 은밀히 프랑스에 도착했다. 이들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관광객 행세를 하며 유럽 여러 나라를 거쳐 각각 따로따로 입국했다.
다음 난관은 연료 보급이었다. 이는 서서히, 극도로 신중하게 진행되었다. 1969년 12월 23일까지 이스라엘 '관광객들'이 셰르부르에 집결했고, 다음 날 연료 보급이 완료되었다. 식량 역시 현지 잡화점에서 한 번에 조금씩 여러 번 나눠 사서 확보했다!
출항 밤에 엔진 소음으로 의심을 살지 않도록, 이스라엘 고속정들은 평소 저녁마다 엔진을 가동하는 습관을 들여 놓았다. 또한 지브롤티르 앞바다와 람페두사 섬 부근에서의 해상 보급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
탈출
12월 25일 새벽 2시 30분, 이스라엘 함정들은 최대한 조용히 셰르부르항을 빠져나왔다. 프랑스 측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고, BBC 영국방송의 보도를 통해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고속정들의 탈출 사실을 알았다. 프랑스 TV 취재진은 헬리콥터로 북해까지 날아가 함정들이 판매처인 노르웨이, 즉 스타보트 쪽으로 향했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고속정들은 이미 비스케이만을 통과해 지중해에 진입한 뒤였다. 계획대로 지브롤티르 앞바다에서 재급유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 척의 연료탱크에 물이 들어가 탱크를 비우고 청소한 뒤에야 보급을 재개해야 했다. 영국 해군이 함정들을 발견하고 신원을 확인하자고 요구했다.
이스라엘측은 응답하지 않았고, 영국측도 이미 BBC를 통해 '셰르부르 고속정' 소동을 접한 터라 "좋은 항해 되시길"이라는 인사로 만족했다. 지중해에서는 기자들이 이스라엘 함정들을 목격했고, 크레타 섬 남쪽 해역에서는 이스라엘 F-4 전투기들이 나타나 안전하게 호위해 주었다.
파리의 분노, 그리고 귀환
한편 파리에서는 술렁임이 일었다. 대통령은 국방장관 미셸 드브레(Michel Debré)를 질책했고, 드브레는 프랑스군 총참모장에게 항공기로 함정들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총리 샤방델마가 사태 확전을 우려해 이 명령을 취소시켰다. 이스라엘 함정들은 총 5,825km를 항해하여 1969년 12월 31일 하이파에 도착했다.
귀환한 5척의 함정은 각각 수파(INS Sufa, 폭풍), 가아시(INS Ga'ash, 화산, 함장 길 코렌 소위), 헤레브(INS Herev, 검), 하나이트(INS Hanit, 창), 헤츠(INS Hetz, 화살)로 명명되었다.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리몬을 추방했고, 관련 프랑스 장교들은 전역했다. 또 하나의 결과는 이스라엘 방위 정책이 프랑스로부터 미국으로 선회한 것이었다. '셰르부르 고속정'들은 도착 직후 개브리엘(Gabriel) 함대함 미사일(훗날에는 하푼도)과 이스라엘 MABAT 및 라파엘(Rafael)의 전자 장비로 무장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