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실제로 그랬습니다. 에드워드 시모어(Edward Seymour)는 조카인 에드워드 6세의 유년기 동안 사실상 왕권을 장악한 인물이었습니다.
섭정으로서의 권력 장악
1547년 헨리 8세가 사망하자, 당시 불과 9세에 불과했던 새 국왕 에드워드 6세를 대신해 에드워드 시모어가 잉글랜드의 섭정(Lord Protector)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소머셋 공작(Duke of Somerset)의 작위도 함께 받으며 왕의 외삼촌이라는 혈연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을 모두 손에 넣었습니다.
시모어는 이 막강한 지위를 발판 삼아 왕국 내에서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빠르게 확장해 나갔습니다. 어린 왕은 명목상의 통치자에 머물렀고, 국정의 실질적인 결정권은 시모어의 손에 집중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의 추진
시모어는 정치적 권력뿐만 아니라 종교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헨리 8세 시절 시작된 수도원 해산과 잉글랜드 국교회(Church of England) 설립이라는 종교개혁의 흐름을 이어받아, 프로테스탄트 방향의 개혁을 한층 더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권력 행사와 급격한 개혁 추진은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시모어는 정적들에게 밀려 1552년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